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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그려진 교회(1) 교회, 그리스도의 몸

작성자 사진: Lee JumanLee Juman

교회, 그리스도의 몸 / 고린도전서 12:12-31


1.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성경은 우리가 교회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마치 그림을 그려 설명하듯 교회를 묘사합니다. 오늘부터 몇 주 동안에는 교회에 대한 성경의 그림들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그림입니다. 교회를 묘사하는 표현 중 가장 아름답고 포괄적인 그림입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그것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육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체는 하늘에 계십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룬 영적인 몸으로써 교회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12절은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고, 27절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교회를 향해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하고,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 종이나 자유자는 그 당시 대표적인 분류 방식으로, 서로 다른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한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국가, 인종, 성별, 연령, 신분 등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 몸이 되었냐면,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말로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즉 한 성령님께서 각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한 몸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이걸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주시는데요. 그 도구(수단)는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셔서 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게 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부류의 많은 사람들이 한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게 되고, 그렇게 연합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교회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교회 건물 안에 있어도, 모임 가운데 있어도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교회란 “모임”이란 것이지요. 교회는 모여야 하고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 지체가 몸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것처럼 신자는 교회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이렇게 한 성령님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의 지체가 된 우리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5-16절을 보면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붙지 않았다’고 말하고,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붙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실제로 붙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되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생각과 확신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가 하는 객관적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비교하면서, ‘나는 저 사람에 비해 가치가 없어, 필요 없는 존재야’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이 사람들과 너무 달라, 도저히 안 맞아,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다른 지체가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가게 해서도 안 됩니다. 21절을 보면, 눈이 손에게 ‘너는 쓸데없다’고 말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너는 쓸데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즉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를 향해서도 “너는 필요 없어, 쓸모 없는 존재야”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게 할 수는 있지요. 예컨대 끼리끼리 어울려 어떤 지체를 소외시킨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너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지체를 무시하고 차별한다면, 그것은 “너는 쓸모 없어”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 중 어느 하나 필요 없고, 쓸모 없는 것은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로 삼으시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지체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고 자라기 위해서는 모든 지체가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신자는 교회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좀 아쉬운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여기서 더 나아게 되면 교회로 모이지 않고, 함께 예배하지 않고서도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야,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교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교회를 떠나려 해서는 안되고, 교회의 형제 자매들을 향해서도 필요없다고 느껴지는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3.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교회도 다양한 신자들의 모임이다.


17절에서 바울은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라고 묻습니다. 만일 온 몸에 눈이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온 몸에 귀와 코가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으로만 교회가 구성되길 바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미국에 최근까지도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색인종은 오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뭔가 들어갈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고 합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 중 어느 교회도 가난한 사람은 오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어울릴 수 없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세상과 같이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인정하고 가난한 사람은 은근히 무시한다면, 결국 그 교회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 형편이 되는 사람들의 교회가 되겠지요. 야고보서 2장 1-4절은 초대교회에도 이와 같은 차별이 이미 있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에는 정치적 이념 때문에 교회를 나와서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는 목회자와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교회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나와 잘 맞는 사람끼리 모이려 하는 것은 마치 눈만 있는 몸과 같이 끔찍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다양한 지체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아니면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룹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정치적인 견해가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세대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만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뜻과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잘 지내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르시고 사랑하셔서 한 몸이 되게 하신 지체를 우리도 사랑하고 섬기야 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며 그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4. 서로 섬기고 돌아보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


22-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고르게, 균형 있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곧 약해 보이는 지체는 더 요긴하도록 하셨고, 덜 귀하게 생각되는 지체는 귀한 것으로 입혀 주시고, 아름답지 않게 생각되는 지체는 더 아름답게 꾸며 주십니다. 반면 아름다운 지체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된 우리 모두는 약하고, 귀하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지체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요긴하게 사용하시고, 존귀하고 아름답게 입혀 주십니다. 예컨대 우리가 교회의 지체로서 부족하지만 교회를 열심히 섬기다 보면 교회에서 존귀한 지체로 인정받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선물을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참 부족한 사람이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존귀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24절을 보면 본래 아름다운 지체에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즉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고 존귀히 여겨주지 않는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분히 존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무엇을 더할 필요가 없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각 지체를 고르게 하시는 이유가 25절에 나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비록 서로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지만 어느 지체는 불필요하고, 어느 지체는 덜 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분쟁하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를 인정하고, 더욱 존귀하고 아름다운 지체가 될 수 있도록 서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가 모이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함께 교제하며 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될 때 밀물처럼 들어와서 끝나면 썰물처럼 나가는 것처럼, 교회도 예배만 드리고 나가기에 바쁠 수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할 뿐만 아니라 함께 모여 서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26절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게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한 지체가 아프다면, 아프다는 사실을 교회가 알아야 합니다. 옛날 어떤 교회는 어떤 규칙을 정했냐면, 교회에 알리지 않고 3일 이상 침대에 누워 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정했습니다. 이상한 법같이 보이지요? 16세기 제네바 교회에서 정한 규칙입니다. 교회가 아픈 사람을 돌아보기 위해서 이런 법을 정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에서는 다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교회가 함께 돌아보려 하는 정신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만일 교회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지체들이 서로 잘 알지 못하고, 그로 인해 교회의 하나됨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교회 공동체의 크기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 충분히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교회의 한 몸 됨을 누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무관심과 냉담함을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때 그 몸의 지체는 모든 시대, 모든 족속, 모든 나라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의 지체이지만, 동시에 각 지역교회의 지체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성찬과 교제를 하며 그리스도의 한 몸 됨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한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관련하여 우리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마치려 합니다. 첫째,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까? 둘째, 나는 옆의 형제들, 자매들과 한 몸이 되었습니까? 그들을 알려고 하고, 그들을 위해 나의 삶을 기꺼이 나눠주려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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