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Lee Juman

세상 속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2)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다니엘 2:17-24


지난주 매일말씀묵상 중에 창세기 41장을 보았는데요. 오늘 살펴볼 다니엘 2장은 창세기 41장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왕이 꿈 때문에 걱정하고, 왕궁의 꿈 해석자들은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젊은 포로(죄수)가 나타나 그 꿈을 해석합니다. 두 사람 모두 꿈의 해석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라에서 높은 직책을 맡게 됩니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에서 그 나라의 이름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사브낫바네아’(은밀한 것을 열어보이는 자)라는 이름으로, 다니엘은 ‘벨드사살’(벨이여 그의 생명을 지키소서)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요셉은 바로의 인정을 받은 후에 지어진 이름이지만, 다니엘의 경우는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지어준 이름입니다. 본래 이름의 뜻인 다니엘(하나님이 나의 심판자이시다)과 상반대는 뜻이었지요. 이렇게 바벨론에서 상반된 의미의 이름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던 다니엘처럼 오늘날 신자들도 세상에서 두 이름, 두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바벨론은 다니엘에게 바벨론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바벨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고 강요합니다. 세상도 신자에게 동일하게 요구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세상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요구에 순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세상에 순응하는 삶일까요? 저항하는 삶일까요? 아니면 순응과 저항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 2장을 통해 이렇게 두 정체성, 즉 세상에서 두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신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니엘 2장의 이야기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답답해하고 괴로워합니다. 왕은 꿈의 의미를 알고 싶어서 왕궁의 꿈 해석 전문가들을 모두 소집합니다. 그들은 “왕께서 꾸신 꿈을 말씀해주시면 저희가 해석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왕은 “내 명령은, 너희가 내가 꾼 꿈과 해석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지 못하면 너희는 죽게 될 것이고, 말해준다면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꿈 전문가들이 당황합니다. “왕이시여, 꿈을 모르고 해석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크고 권력있는 왕도 저희들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꿈과 해석을 함께 말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신의 영역입니다.”


이 말을 들은 느부갓네살이 진노합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지요. 그 처형 명령의 대상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도 포함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니엘은 왕께 나아가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해석을 보여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요청은 승낙된 것 같습니다. 다니엘은 집으로 돌아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이 일을 말하며 함께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꿈과 해석을 다니엘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은밀한 일을 나타내 보여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의 꿈과 해석을 알게 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읽어 봅시다.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단 2:20-23).


다니엘은 왕 앞에 서게 됩니다. 왕이 말합니다. “나의 꿈과 그 해석을 네가 알려줄 수 있겠느냐?” 다니엘이 대답합니다. “왕이 요구하시는 은밀한 일은 어떤 사람도 능히 왕께 말해줄 수 없습니다. 은밀한 일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은밀한 일을 나타내 주셔서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에서 한 큰 신상을 보았습니다. 매우 크고 광채가 나고 두려운 모양의 신상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신상을 만든 재료였습니다. 머리는 금, 가슴과 팔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종아리는 철, 발은 철과 진흙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으로 다듬지 않은 돌 하나가 날아와서 신상의 발에 부딪혔는데, 그때 신상이 다 부숴져 먼지가 되어 흩어집니다. 우상을 친 돌은 태산과 같이 커져서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 ⓒGetty Image



이 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금으로 된 머리는 바벨론과 느부갓네살 왕을 의미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느부갓네살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권세와 영광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 이후에 다른 나라가 일어나게 될 것이고, 다른 왕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성격의 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고, 이 나라의 권세는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홀로 영원히 설 것입니다.


다니엘의 해석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즉시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 일로 다니엘은 온 나라를 다스리는 직책을 받고, 모든 박사들의 어른이 됩니다.


다니엘 2장의 이야기가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은, 이 세상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지나가다 결국 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고 결코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 모두를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신자는 세상을 살되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을 따라 세상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면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특징


(1) 세상은 두려워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가장 강한 나라의 황제였고, 아직 젊었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합니다. 무엇이 그를 두렵게 했나요? 그는 자신이 이룬 것들,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합니다. 느부갓네살은 신상이 자신과 바벨론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돌이 날아와 신상을 무너뜨리고 먼지로 만든 것입니다. 신상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상은 머리는 금인데, 발은 철과 진흙이 섞여 있습니다. 기초가 영 부실하지요. 강력한 돌이 날아와 부딪히자 무너져 버리고, 형체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강하고 화려하지만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몰라 두려워합니다.


(2) 세상은 무능력합니다. 바벨론의 박사, 지혜자들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요 전문가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가장 뛰어난 정치가, 과학자, 사상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지하고 무능력합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왕의 꿈을 해석해 줄 수 있었지만, 왕의 꿈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왕은 과연 그들의 데이터와 해석이 확실하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확실한 해석을 말할 수 있다면 꿈까지 말해보도록 요구하였지요. 매우 억지스러운 요구였지만 이를 통해 세상의 지혜자들의 실상이 폭로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자들은 존재하는 것들을 관찰하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 역사의 의미와 장래에 일어날 영원한 일들을 알지 못합니다.


(3) 세상은 폭력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느부갓네살의 갑질을 봅니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하면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분노하며 다 죽여버리려고 합니다. 뉴스를 통해 이런 사람들의 소식을 보고 듣습니다. 예를 들어 재벌가의 사람이 운전기사님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재벌과 권세자들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합니다. 전화상담원에게 폭언을 일삼거나, 카페 직원이 친절하지 않다고 트집을 잡으며 함부로 대하는 등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갑의 위치가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갑질을 합니다.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


이러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신자는 세상과 동일한 위험과 위기를 마주합니다. 느부갓네살과 바벨론의 박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즉 세상은 신자들에게도 두려운 곳이고, 불확실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곳이지요.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신자는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또 다른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데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르쳐 줍니다.


(1) 다니엘은 신자들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세상이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세상은 본질상 일시적이고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신자는 일시적이고 망하는 세상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으로 충분한 사람이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자도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실패할 때 슬퍼하고 괴로워하니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지혜로운 계획 안에 있음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궁극적으로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고 실패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강하고 위대한 권세자도 허망하게 무너지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2) 다니엘은 신자들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서는 어리석게만 느껴집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충실한 세상이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을 다스리시고, 모든 은밀한 일을 아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모든 은밀한 일을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결국 무너질 것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서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자에게 남다른 지식과 통찰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신자는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기에,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3) 다니엘은 신자는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해줍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 망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황금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발바닥은 철과 진흙이 엉켜있는 부실한 세상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바로 그 나라의 가장 책임있고 영향력 있는 직책을 맡아서 섬깁니다. 이 세상의 허망함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함을 알았다면 세상을 등지로 떠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니엘과 세 친구는 자신들이 어떤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신상의 이야기 안에서 금으로 된 머리를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사람의 손으로 다듬지 않은 뜨인 돌, 곧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세상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연약하고 불안하고 종국에는 사라질 허망한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의 이야기만 듣고 살아갈 때 모든 것이 가루처럼 흩어지고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섬길 수 있습니다.


결론/적용


우리는 세상에서 두 이름, 두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과 상관없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섬기며 함께 살아가되,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나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렵고 허망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기에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잃어버리고 실패해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찬송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는 신자와 교회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은 신자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강력한 비결을 말해줍니다. 2장 17-18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다니엘은 위기의 순간, 두려운 순간에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은 믿음의 친구들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다스리시는 분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는 기도의 벗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함께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조회수 13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entario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