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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31) 호세아

최종 수정일: 2022년 4월 23일

호세아 개관 |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호세아 14:1-4



호세아 개관 자료영상

* 바이블 프로젝트 홈페이지(www.bibleproject.com/korean)에서 다운받은 자료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더 다양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소선지서를 살펴보겠습니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12권의 선지서를 묶어 소선지서라고 합니다. ‘소’선지서라 부르는 까닭은 분량이 적기 때문입니다. 소선지서는 대략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1) 앗수르가 강성했을 때(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냐, 미가), (2) 앗수르가 쇠퇴했을 때(나훔, 하박국, 스바냐), (3)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학개, 스가랴, 말라기).


호세아와 그의 시대


‘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세아 1:1에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가 소개됩니다. 남유다 왕국에서는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되었던 시대이고, 북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2세가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였는데, 유다 왕들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됩니다. 호세아의 활동시기는 여로보암 2세 통치(BC 793-753) 후기부터 히스기야 통치(BC 728-686) 초기까지로 생각되는데요. 그 사이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것입니다BC 722).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외쳤던 메시지가 이제 남은 유다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하여, 유다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서에는 유다 백성들에 대하여 자주 언급됩니다.


여로보암 2세가 통치했던 시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비교될 만한 황금 시대였습니다. 전성기의 영토를 회복했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최악의 시대이기도 했는데요. 지도층, 상류층은 탐욕과 사치, 쾌락에 빠져 있었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착취와 압제 속에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린 주된 원인은 가나안의 바알 신앙이었습니다. 바알은 폭풍의 신으로 농경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비를 주관하는 신입니다. 따라서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의 핵심은 바알을 잘 섬겨야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도 그 영향을 받아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알을 함께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종교란에는 기독교라고 쓰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헌금도 합니다. 그리고 주간에는 철저히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을 따라 성공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걸 혼합주의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호세아 시대에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은, 백성들이 그런 식으로 살았는데, 정말 부자가 되고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가나안 방식으로 살았더니 바알이 우리에게 이런 풍요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더 열심히 바알을 섬겼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방식을 좇아 살아갔더니 정말 성공하고 부자가 되었고, 더 열심히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아간 것이지요. 물론 동시에 교회도 열심히 나와서 헌금도 많이 내고 봉사도 열심히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만족스러웠지요. 바로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호세아에게 임했습니다. 모두가 이 땅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행복하게 사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러한 것들을 약속하는 우상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은 결코 함께 섬길 수 없으니, 바알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바알을 잘 섬겨서 이렇게 잘 살게 되었는데, 바알을 버리라니 그럴 수는 없지요. 대신 교회에 헌금 더 많이 낼께요. 이해해 주세요.”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호세아의 구조


호세아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단락은 1-3장으로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형편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책망합니다. 두 번째 단락은 4-14장으로 이스라엘의 죄악을 구체적으로 고발하고 심판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강력하게 호소합니다.


호세아의 내용


호세아서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1-3장에서 호세아의 상징적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준 후에, 4-14장에서 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이 시간에는 1-3장을 중심으로 호세아의 내용과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1:2)였습니다. 충격적인 말씀이지요. 이해하기 어려운 부당한 명령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런 명령을 하신 까닭은 이스라엘의 영적 실태가 얼마나 충격적인지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은 남편과 아내와 같은 언약 관계입니다. 남편은 아내만을 사랑해야 하고, 아내는 남편만을 사랑해야 하는 관계가 부부 관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였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풍요와 쾌락을 위해 바알을 섬겼고, 나라의 안정을 위해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행한 음행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 고멜에게서 세 명의 자녀를 낳게 됩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인데, 예후 왕조의 멸망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인데 하나님께 긍휼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아들은 ‘로암미’인데,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음란한 여인을 통해 낳은 자녀들은 이스라엘의 음행의 결과, 열매가 어떤 것인지 말해줍니다. 즉 그들은 망할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떠난 결과는 풍요와 행복이 아닌 멸망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음행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3:1). 그러면서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와 연애하고 있는 아내를 찾아가서 그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호세아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값을 주고 그녀을 데려옵니다. 그리고 이제 나와 함께 하며 다른 남자에게 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좇아 세상으로 떠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징계하시는 까닭은 그 길의 끝이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변함 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징계와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찾으시고,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4장부터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음행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책망합니다. 이스라엘 안에 인애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이스라엘 사회는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스라엘의 종교는 타락하였고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함께 부패하여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잠시 고난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세상은 매력적이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풍요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숭배와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은 이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쳐도 듣지 않기 때문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1:8-9).


호세아 선지자가 마지막으로 호소합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14:1-3).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14:4).


호세아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에서 전했던 메시지는 유다 백성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였고,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호세아 14:9 말씀입니다.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세아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와 같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또한 그렇다고 말합니다. 호세아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호세아서의 주제와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순종하기 힘든 부당한 요구를 하셨을 때 호세아는 순종합니다. 호세아가 그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만약 우리에게 그런 요구를 하신다면 어땠을까요?


3.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인애(헤세드)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이스라엘은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없는지 점검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셨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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