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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43) 말라기


말라기 개관 자료영상

* 바이블 프로젝트 홈페이지(www.bibleproject.com/korean)에서 다운받은 자료입니다. 홈페이지에서 더 다양한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말라기의 숲과 나무

형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를 진정으로 경외하라 | 말라기 3:13-18



말라기의 숲


말라기(Malachi)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My messenger)’라는 뜻으로, 그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말라기 개인에 대해서는, 그가 포로기 이후 유대 땅에서 활동한 선지자였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아마도 말라기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모두 재건되고 예루살렘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정착되었던 때에 활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 땅은 여전히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열강들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말 1:8 참조). 비록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어 안식일마다 제사가 드려지기는 하였지만, 같은 제사가 반복되자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내적 감격을 잊어버리고 형식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부름을 받은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말라기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일련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말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영적 상태가 어떠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1-5)


여호와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제일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1:2).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라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바벨론 포로생활과 이 땅의 황폐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하는 원망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현세적인 기준으로만 측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세적인 기준만 놓고 보면 에돔 사람들이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곧 그들을 사랑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에돔은 아무런 약속도 보장받지 못했고 결국 그들은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1:4)이라고 일컬어질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고 계셨고 사랑하고 계셨으며, 그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었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멸시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일이었습니다(1:2-5).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1:6-14)


또한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들의 부패와 타락을 책망하였습니다(1:6-14).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계명을 잘 깨닫고 예배를 주관해야 하는 지도자들인데도 그들은 앞장서서 예배를 멸시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공경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6절). 그들은 더러운 떡을 주의 단에 드리고,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훔친 것, 흠 있는 것을 제물로 드림으로 예배를 변질시키고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1:6-7).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이런 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아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1:9)고 책망하시면서 그들과 그들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1:10). 하나님은 예배의 타락을 심각한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경멸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1:14). 하나님께서는 타락하고 변질된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예배에 대한 태도는 곧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예배가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예배인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2:1-9)


말라기는 계속해서 제사장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진리를 먼저 바로 알고 실행하여 백성들을 죄악에서 떠나게 해야 할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고 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얼굴에 배설물을 뿌리고 그들에게 이미 내린 복을 저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2-3,9). 하나님의 경고는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미 받은 복까지도 친히 저주하시며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2:10-3:6, 13-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자, 그 영향은 유다 백성들의 가정적, 사회적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2:10-3:6).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통혼하고(2:11-12), 젊어서 취한 아내를 학대하고 이혼하여 가정을 붕괴시키고 자녀들은 경건한 자손들로 양육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2:14-16). 또한 품꾼의 삯을 속이고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일,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일(3:5) 등 불의가 판을 치게 되었고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와 헌물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2:12-13).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되면 세상의 방식과 자신의 욕심대로 움직이게 되고, 영적-도덕적 혼란과 부패와 비참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술의 말로도 하나님을 크게 대적하였는데, 이 죄를 인하여서도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악행을 하면서도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였습니다(2:17). 그들은 이러한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3:13). 자신들은 모든 면에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들은 또한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곧 그 명령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으며, 신앙생활은 다 부질없는 일이며, 악한 자가 오히려 더 잘 된다”고 하였습니다(3:14-15). 이는 매우 불경건하고 불신앙적인 말입니다. 하나님을 허수아비 상대하듯이 함부로 대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3:13).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을 하나님은 심히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불경건한 세대 가운데에서도 자신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지키면서 경건한 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경건한 자들의 말과 대화도 다 들으시고 다 기억하시며 그들의 이름과 말을 그의 기념책에 기록하시고, 그들을 귀히 여기시되 아들을 아낌같이 아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3:16-18).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3:7-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한 것을 인해서도 하나님의 책망도 받았습니다(3:7-12). 십일조와 헌물은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하나님의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드리기를 아까워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은 우리 소유의 지극히 적은 일부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고, 우리의 온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과 감사와 헌신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수입의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드려서 성전의 일(예배)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과 사역을 위해 사용되도록 하셨습니다(레 27장, 민 18장, 신 14장). 그러므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이것 역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3:9). 하지만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10-12).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반드시 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날이 임할 것을 바라보고 주의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4장)


이런 패역한 백성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서 하나님의 종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게 하실 것과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3:1). 이 예언은 400여년 후에 주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신 세례 요한과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는 백성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의 예배도 의로운 제사가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2-4).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불로 임하셔서 교만한 자와 악행하는 자들을 초개같이 사르시고 심판하실 것이지만(4:1),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여 주실 것이고, 그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기뻐하며 뛰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4:2).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게 될 심판까지 바라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복음을 멸시하고 비웃는 자들은 그날에 크게 놀라고 후회하며 가슴치게 될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으로,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4:4)고 권면합니다. 심판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하시기 전에 속히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날은 그들에게 심판의 날이 될 것이기에, 죄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며 여호와를 진심으로 경외하는 길로 행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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