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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47) 신구약 중간사(4)

헤롯 왕조


모데인의 제사장 맛다디아로부터 시작된 유대의 무력 항쟁(마카비 혁명, 주전 164년)은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 요나단, 시몬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유대는 주전 142년, 셀류키드 왕조로부터 독립하기에 이릅니다. 시몬은 유대인들로부터 “지도자 겸 대제사장”이라는 칭호를 얻고, 이때부터 주전 63년 로마가 유대를 점령할 때까지 하스몬 왕조가 유대를 통치합니다. 하스몬 왕조의 역사는 권력 투쟁과 정치 음모가 난무하는 역사였습니다. 하스몬 왕조 초기에는 적극적인 영토 확장에 성공하여 다윗과 솔로몬 시대만큼이나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지만, 후기로 갈수록 권력 투쟁이 심해지고, 권력을 위해 헬레니즘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런 하스몬 왕조에 반대하며 등장한 그룹이 바리새인, 에세네파이고, 하스몬 왕조의 대제사장 편에 섰던 사람들이 사두개인이었습니다.


헤롯대왕

주전 67년 경 형제인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왕권을 놓고 암투를 벌이며 내전이 일어납니다. 두 형제는 각각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게 군대를 이끌고 유대로 들어온 폼페이우스는 약해질대로 약해진 유대를 정복해 버립니다. 주전 63년, 폼페이우스는 힐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의 자리에 앉히고, 유대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두매 사람 안티파터를 유대의 총독으로 삼았고, 이제 유대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게 됩니다. 안티파터의 아들 헤롯이 로마의 지원을 받아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면서, 헤롯 왕조가 시작되는데요, 이 헤롯이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등장하는 헤롯으로(마 2:1-19, 눅 1:5), 다른 헤롯들과 구별하여 헤롯대왕이라고 부릅니다. 헤롯대왕은 탁월한 정치 감각과 함께 잔인한 폭군의 기질이 뒤섞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받았지만, 유대인들은 그가 이두매 사람이라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헤롯은 혈통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유대인의 마음 속에 우리의 왕조로 남아 있는 하스몬 가문의 공주를 둘째 아내로 맞이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에게 인심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답게 재건하는 등 우호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둘째 아내가 음모를 꾸민다고 의심하여 둘째 아내와 그의 아들들을 살해하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학살하는 등 권력에 위협이 되면 잔혹한 폭군이 되었습니다. 유대는 헤롯의 통치 기간에 경제적 번영, 영토 확장을 이루었고, 유대 땅 전역에 그리스식 극장, 원형극장, 전차 경기장 등이 건설되었습니다. 이런 정책을 환영하며 헤롯을 지지하던 유대인들이 헤롯당(막 3:16; 12:13)입니다. 반면 보수적인 바리새인과 많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헤롯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

헤롯은 생전 왕위 계승에 대한 유언을 여러번 번복했고, 결국 그의 사후 왕위 경쟁에 있던 세 아들이 그의 유언을 놓고 다투게 됩니다. 세 아들은 로마의 황제에게 해결을 요청하고,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이 다스리던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주고, 분봉왕(작은 영토를 통치하는 자)의 칭호를 줍니다. 헤롯 대왕에게 총애를 받았던 아켈라오는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지만, 그의 폭정을 견뎌낼 수 없었던 유대인들의 탄원으로 주후 6년 경 로마 황제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켈라오의통치를 피해 갈릴리고 갔다고 말합니다(마 2:21-23). 아켈라오가 쫓겨난 이후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로마의 총독이 파견되는데,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총독은 본디오 빌라도(26-36년, 예수님 처형)와 벨릭스(52-59년), 베스도(59-62년, 바울 재판, 사도행전 23-26장 참고)가 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아켈라오와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로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 헤롯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자주 등장하는 분봉왕 헤롯(눅 3:19)입니다. 헤롯은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 빌립(셋째 아내의 아들)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로 세례 요한에게 비판을 받았고, 결국 이 일로 세례 요한은 처형당합니다(막 6:17-29). 예수님은 헤롯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경고를 들으셨을 때 헤롯을 가리켜 ‘그 여우’라 말씀하기도 하셨는데(눅 13:31-32), 그의 교활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했던 까닭은 정치적 이유가 컸습니다. 헤로디아는 살해당한 헤롯 대왕의 둘째 아내의 두 아들 중 한 아들의 딸로, 하스몬 혈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하스몬 가문이야말로 유대인의 왕가라 생각했기에, 헤롯 안디바는 아버지와 같이 하스몬 혈통의 아내를 두면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 되는데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헤로디아도 남편 빌립이 왕위 경쟁에 들지 못하자 기꺼이 헤롯 안디바와 결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헤롯 빌립은 헤롯대왕의 다섯 번째 아내의 아들로 앞서 헤로디아의 전남편 빌립과는 다른 사람입니다(막 6:17 참고). 그는 갈릴리 북부와 동부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는데(눅 3:1), 그는 헤로디아의 딸(춤값으로 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살로메, 즉 자신의 조카를 아내로 맞습니다. 어떤 이들의 추측처럼 그녀에게 하스몬 혈통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러나 빌립은 결국 상속인 없이 죽고, 그의 영토는 로마의 속주로 들어가게 됩니다.


헤롯 아그립바

사도행전에도 헤롯 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헤롯 아그립바 1세인데요, 그는 헤로디아의 오빠로 하스몬 혈통을 가진 헤롯대왕의 손자입니다. 그는 로마에서 공부하며 로마 황제와 친분을 맺기도 했습니다. 헤롯 왕조에 속하면서 하스몬 혈통과 로마 황제와의 친분이라는 대단한 배경 때문에, 그는 할아버지에 이어 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이란 칭호를 받아 유대를 다스리게 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헤롯 왕이 아그립바 1세인데, 그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처형하고, 베드로를 체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교만했고, 누가는 그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중이 먹어 죽으니라”(행 12:23). 이후 유대 지역은 로마의 총독에 의해 통치를 받습니다. 참고로 사도행전 25-26장에서 총독 베스도에게 바울의 변론을 들어보고 싶다고 했던 아그립바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 아그립바 2세로 그는 갈릴리 북부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었습니다.


아리스도불로

헤롯 왕조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로마서 16:10에 잠시 언급되는 인물, 아리스도불로입니다. 아리스도불로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형제로 모든 면에서 그와 동일한 조건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아그립바 1세는 로마의 세 번째 황제인 칼리굴라와 친분이 있었다면, 아리스도불로는 네 번째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그립바 1세가 죽은 후에 유대인의 왕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아리스도불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유대로 돌아오지 않고 로마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인사를 전하면서 그 아리스도불로의 가족들에게 문안을 전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하스몬 왕조는 권력 투쟁에 빠져 로마에게 나라를 갖다 바치게 되었고, 헤롯 왕조는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아리스도불로는 권력의 자리로 들어오지 않고 로마에 남았고,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는 인사에 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로마교회의 교인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사후 그의 가족들과 노예들이 로마교회에 들어온 것인지에 대하여는 이견이 있지만, 만약 그가 유대인의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로마교회를 섬기기 위해 로마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라면 그는 권력과 성공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한 교회의 지체가 되어 성도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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