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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슬기로운 성경개관(57)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개관 |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

고린도후서 6:1-10, 11:13-15


고린도후서의 기록 배경과 목적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전서를 보낸 이후 에베소를 떠나(행 20:1) 마게도냐 지방에 있을 때 기록한 편지입니다(고후 2:13; 7:5). 고린도전서보다 대략 1년 뒤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55년 경), 고린도전서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연보를 권면했는데(고전 16:1-2), 고린도후서에서는 그것이 일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8:10; 9:2). 바울은 자신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후 7:5). 바울의 사역은 극심한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1:4-10; 6:4-10; 11:23-27 참고). 그러나 바울에게 환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적 문제였습니다.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그러나 바울은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환난으로 인해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환난을 기뻐하였습니다(고후 12:10).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기”(고후 4:17)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는데요, 먼저 교회 안에 교회를 크게 근심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2:5). 구체적인 상황은 알기 어렵지만, 불의를 행한 자와 불의를 당한 자가 함께 있었습니다(7:12).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합당한 치리를 행하되(2:6),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2:7-8). 두 번째로 불신자들과 무분별한 교제를 나누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6:14)고 경고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고전 5:10),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불의에 동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문제는 교회의 인색함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를 1년 전부터 계획하였음에도 준비하고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 원인을 복음의 은혜를 제대로 알고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8:9). 끝으로 고린도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거짓 사도들이 들어와 다른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11:4). 거짓 사도들은 사도 바울을 비난하고 대적하였는데요, 그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허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꽤 길게 자신의 사도됨을 변호하는데요(3-7, 10-12장), 그 목적은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4:5; 5:12), 고린도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지 않고 바른 복음 위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10:8; 12:19). 그래서 바울은 한편으로는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을 철저히 근절하면서(11:12), 다른 한편으로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13:5)고 권면합니다.


고린도후서의 구조와 내용


고린도후서는 크게 서론(1-2장), 본론(3-12장), 결론(13장)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서론에서 바울은 문안 인사와 함께 고난보다 더 큰 위로가 있음을 전합니다. 이어서 편지를 기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본론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첫째, 바울과 복음을 대적하는 거짓 사도들에 맞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참된 복음 사역과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입증합니다(3-7장). 둘째,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를 다시 부탁하며 독려합니다(8-9장). 셋째, 바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10-12장). 결론은 바울의 고린도 방문 계획과 인사로 마무리 됩니다. 고린도후서의 내용은 중요한 두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고린도후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한 가지 주제는 복음이 가져오는 역설적 삶입니다. 바울은 가난함과 부요함의 역설 관계에 관하여 말하는데요, 그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가장 부요하신 그리스도께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함입니다(8:9). 바울 또한 이런 역설 가운데 살았습니다. 바울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6:10) 하였습니다. 이 역설은 마게도냐 교회에 의해서도 실천되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극한 가난함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하였던 것입니다(8:2).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을 거쳐 교회로 이어진 이 역설적 삶은 복음을 믿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나야 할 특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는 자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로, 죽은 자 같으나 살리는 자로, 가난한 자 같으나 다른 이를 부요하게 하는 자로 사는 사람들입니다(6:8-10; 12:10).


복음이 주는 역설적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연보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을 제시하면서, 몇 가지 연보의 원리를 말해줍니다. 먼저 연보에는 심음과 거둠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에 관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넉넉함과 인색함에 관해 말하는 것입니다. 복된 마음으로 심는 자가 복되게 거둡니다. 다음으로 연보의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으로 할 때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즐겁게 자원하여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넘치게 베푸시는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함입니다. 이러한 연보는 성도들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풍성하게 합니다.


(2)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의 대적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바울을 대적했는데요, 바울의 생활을 문제삼았고 바울의 신학에 도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공격하는 대적자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적합니다. 먼저 대적자들의 생각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대적자들을 가리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102)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먹고 마시는 문제, 세상적 문제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않는다”(10:3)고 답합니다. 육체를 가진 우리가 육체의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육신의 가치를 절대화하지도, 육신이 요구하는대로 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적자들의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바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치 않다”(10:10). 글로 접한 바울과 달리 실제 바울은 말도 어눌하고 육체도 연약하다는 것이지요. 바울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울의 말과 삶이 그가 편지로 전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말이 어눌하고 몸이 약해도 그는 복음 안에서 일관된 삶과 주장을 하였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대적자들의 행동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칭찬하는 자들”(10:12)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높이고, 자신을 표준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반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임에도 자신을 제한하였는데요. 제한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10:13). 바울은 스스로를 높이거나 사람들로 높임을 받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이었기 때문입니다(10:17-18).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바울의 대적자들에게 있는 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신학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신학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다른 예수, 다른 성령, 다른 복음(11:4). 그들은 예수를 말하고 성령을 말하고 복음을 말하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매우 간교한 방식으로 교회에 침투하였습니다. 바울은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11:3)라는 말로 그들의 간교함 묘사합니다. 그들은 정통성 있는 신분과 뛰어난 언변 등 자랑할 만한 조건들을 갖추고 사람들에게 큰 사도들처럼 인정받으며 교회에 들어왔고, 교회는 너무 쉽게 그들을 용납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대적자들을 가리켜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11:13)이라고 말합니다.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것처럼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는 것입니다(11:14-15). 이들의 목적은 오직 성도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11:3). 그래서 바울은 혼신의 힘을 다해 대적자들과 싸웠던 것입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고린도후서에 따라 ‘복음적 삶’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어떻게 복음적 삶을 살 수 있을까요?


2. 오늘날에도 간교한 방식으로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는 복음의 대적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분별하고 대항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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