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훈련(1) 습관이 삶을 변화시킨다 / 엡 4:21-24
1. ‘습관’과 ‘훈련’
오늘부터 8주 동안 ‘습관 훈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교재는 임승민 목사님이 쓰신 '오늘부터, 습관훈련'이란 책입니다. 교회에서 ‘습관 훈련’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것 같은 표현이기 때문이지요. 더 나아가 습관 훈련이란 말이 왠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습관적인 신앙생활’이라 하면 진심과 내용은 없이 마지못해 형식적으로만 신앙 생활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의미의 습관은 우리가 주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습관’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41), 다니엘도 늘 행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단 6:10).
훈련이란 말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요. 우리가 구원 받고 살아가는 삶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데, 훈련이란 말은 나의 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훈련이 우리가 구원을 받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더할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훈련이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조건이나 자격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훈련시키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2:11-12을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하는데요. 양육이라고 번역된 말은 훈련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훈련시킨다는 말이지요. 훈련을 통해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우리를 훈련시킵니다. 그 훈련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요. 첫째, 불경건과 정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즉 부패한 옛 사람의 습관(굳어 버린 생각, 감정, 행동)을 버리고 새 사람의 습관을 형성하도록 훈련합니다. 이렇게 습관과 훈련은 함께 사용할 수밖에 없는 단어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을 습관으로 형성해가는 훈련에 대해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처음에는 4주로 계획했던 것을 8주로 늘린 것은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하나씩 적용하며 훈련해 가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오늘은 ‘습관’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2. 습관이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을 때, 혹시나 변화를 기대하며 어떤 노력을 했지만 결국 처음과 똑같은 모습을 볼 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왜 사람은 변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왜 변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는데도 우리의 삶을 보면 옛 사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10년 넘게 하였는데도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와 내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 지었던 죄를 오늘 반복해서 짓고, 관계의 실수를 반복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왜 우리는 변하지 않을까? 고민만 깊어집니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신자가 맞다고 전제한다면, 그 이유는 ‘습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네, 우리가 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습관’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생각하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오직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성령님께서 은혜로 역사 하실 때만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은혜로 변화시키십니까? 가만히 있으면 어느 순간 변하게 될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님께서 은혜로 일하시는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의 방편’ 또는 ‘은혜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은혜의 수단은 성령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통로와 같습니다. 예컨대 은혜의 방편 중에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않고 읽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성령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 이유, 옛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성령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은혜의 방편을 소홀히 여기고 게으르게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은혜의 방편을 꾸준히 사용하여 경건한 습관을 만들지 못했고, 세상적이고 악하고 게으른 습관은 더욱 굳어졌기 때문에, 교회에 오래 다니며 신앙 생활을 했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은혜받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은혜의 방편을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우리 삶 가운데 은혜의 습관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습관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먼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을 행하는 존재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때 사랑을 욕망이란 말로 바꾸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자신이 진정 욕망하는 것을 행하는 존재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중독’입니다. 해롭다는 것을 알고 하지 않으려 해도 다시 하게 되는 이유는 그 행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분야는 광고 마케팅이지요. 그들은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욕망과 행동의 관계에 관심을 갖는 심리학자들은 욕망이 행동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을 반복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욕망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이 진정 사랑하고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욕망이 습관이 된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부패한 욕망, 세상적인 정욕이 우리 마음 중심에 깊이 새겨져서 습관이 되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화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습관을 상세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말을 들어봅시다.
“우리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깨끗이 씻음 받지만, 우리의 육체의 감옥에 매여 있는 한 우리가 온갖 악행과 많은 연약함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기 때문에 꾸준히 전진해야 하며, 온갖 악행에 얽히더라도 날마다 그것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게으름과 부주의함을 떨쳐 버리고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펴서, 무의식 중에 육체의 궤계에 빠져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의 감옥에 있는 한 우리는 항상 죄와 싸워야 합니다. 꾸준히 전진해야 하고 날마다 싸워야 하며,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칼뱅이 말하는 죄와의 싸움이 바로 ‘습관 훈련’입니다.
3. 제자도란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4:21-24을 읽었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옛 사람이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삶입니다. 구습이란 과거의 습관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죄악된 습관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굳어져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해져 있는 생각과 행동이 있을 것입니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그렇게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습관화시킨다고 합니다. 우리의 습관 중에 죄악된 습관, 경건하지 않은 습관, 세상적인 욕망에 따른 습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점검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제이 아담스 목사님이 들려주는 사례를 보십시오.
나는 “서로 아끼며 세우는 길”에 관해 설교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서로를 아끼고 존경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역설했다. 나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치켜세워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설명했다. 자기 종들, 그중에서도 아주 비천한 자들에게 따뜻한 배려를 베풀어 줌으로써 좀더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위대하고 고상한 사람으로 우러름 받겠는가를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눈물을 흘리거나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종이 울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저녁이 차려진 방으로 날쌔게 달려가서, 서로 밀고 당기며 좋은 자리에 앉아 서로 제일 귀한 그릇으로 먹으려고 사납게 먹기 시작했고, 아무도 서로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들은 욕심을 다 채운 후에 입가를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참 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원리를 행할 수 있는 기회는 옛 본성, 옛 생활, 몸에 배인 옛 급관에 선수를 빼앗겼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이 과거의 죄악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같은 원리로 새 사람을 입는 것은 거룩한 습관을 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만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새로워진 심령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입으라는 말은 우리에게 반복되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한 번 거룩한 행위를 한 것이 평생의 거룩함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 사람을 입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해져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은 거룩한 습관을 만들라는 말과 같습니다.
습관을 만든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습관의 중요성을 잘 알 것입니다. 평소에 맛있게 양껏 먹었던 음식을 끊고 맛 없는 음식을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식습관만 바꾸는 일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거기에 평소에 누워서 뒹굴거리며 유튜브 보는 시간에 땀 흘리며 운동을 하는 것, 하루 이틀이 아니라 몇 개월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파고든 죄악 된 습관을 거룩한 습관으로 바꾸는 일은 어떨까요? 죄에 익숙해져 버린 육체에 경건을 배이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훈련이 필요할까요? 부지런함과 열심은 또 얼마나 많이 요구되겠습니까? 그렇기에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새 습관을 입는 것이야 말로 제자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지금까지 자기를 형성한 죄악된 습관을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한 습관을 만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제자도란 습관을 바로잡는 것”(제임스 스미스)입니다.
습관을 바로잡읍시다. 우리의 죄악된 욕망이 반영된 옛 습관을 바로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이루는 새 습관을 형성해 갑시다. 습관을 바로잡을 때 비로소 우리가 변화됩니다.
이해와 적용을 위한 질문
1.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2. 칼뱅이 기독교강요에서 언급한 거룩한 습관에 관한 내용과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4:21-24에서 말한 내용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세요.
3. 제자도란 습관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옛 사람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내가 힘써야 할 새 사람의 습관은 무엇입니까? 각각 한 가지씩만 이야기해 보고, 한 주 동안 그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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