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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신앙 베이직2] 거듭남, 신앙생활의 출발점

거듭남(중생), 신앙생활의 출발점 | 요 3:1-15



거듭남의 필요성과 중요성


어느날 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원(요 3:1)이었고, 이스라엘의 그 선생(요 3:10)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가르치는 학자요 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율법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경건한 신자였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약속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나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생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고 말씀합니다. 육체적인 생명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른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엡 2:2-3). 쉽게 말해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요, 영적으로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알았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설령 우리가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생명,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어야 삶을 살 수 있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생명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을 행할 수 있습니다. 태어나야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위로부터 주시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빠지지 않고 성경을 많이 읽고 알아도 거듭나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청교도 스티븐 차녹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이 육체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듯이, 영적으로 죽은 사람은 영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새로운 본성이 거듭남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지 않는 이상, 우리가 행하는 가장 좋아 보이는 섬김이 비록 사람의 눈에는 화려해 보이고 멋져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무런 생명력도 없고 아무런 실체도 없다. 그것은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해골과 같을 뿐이다. 왜냐하면 죽어 있고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방식과 그 결과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니고데모의 질문이었습니다(요 3:4).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에스겔 36:25-27을 따라 말씀하신 것인데요, 여기서 에스겔 선지자는 새 언약 백성들 안에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먼저 맑은 물로 모든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15:3; 엡 5:26).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 것”(벧전 1:23)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대답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사람이 스스로 부활할 수 없는 것처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가 살아나는 것 역시 우리 힘으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거듭남(중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령님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일을 행하시는 것을 우리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바람의 길을 알지 못해도 바람의 영향을 보고 느끼는 것처럼, 성령님의 신비로운 사역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거듭난 생명의 활동을 통해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신비로운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일이 거듭남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으로 이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거듭남의 은혜는 먼저 우리의 지성을 통해 들어오게 됩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우리의 상태는 빛이 조금도 없는 어둠과 같습니다. 그때 복음의 말씀을 통해 밝은 빛이 비취고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창을 내어 그 빛으로 우리를 채우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따뜻한 빛으로 차갑게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부드럽게 하시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의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전에 없던 “영적 이해력”이 생깁니다. 거듭나기 이전에 니고데모는 땅의 일을 말해도 믿지 못했기에, 하늘의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믿을 수 없었습니다(요 3:12). 그러나 거듭난 신자는 하늘의 일, 곧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표적들, 병을 고쳐주시고,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들을 보고 경험해도 여전히 땅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신자는 그 모든 표적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으라는 교훈으로 마무리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게 하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먼저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은혜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영적 감각과 이해력이 생기고, 그 감각과 이해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용


생명이 있어도 건강을 잘 관리하는 사람과 관리하지 않는 사람에 따라 생명의 활발함과 강건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거듭난 신자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영적인 생명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은혜 안에서 자라가고 훈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편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여 말씀과 성찬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고, 개인적으로도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이 모든 은혜의 방편들을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 생명의 역사를 더욱 충만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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