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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언약 5] 아브라함 언약(1)(창 15:1-2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에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게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 15:6-7)

노아가 살던 시대는 “여자의 후손”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경건한 셋의 후손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하는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 간의 구별이 사라진 시대였습니다. 세상에는 사람의 죄악이 관영했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고 강포가 충만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잊혀졌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일은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 노아를 통해 세상을 보존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보존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계획을 알려주시고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홍수 가운데에서 옛 세상을 심판하시고, 방주에 탄 노아의 여덟 식구와 짐승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약속과 약속에 대한 믿음을 보존하신 것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땅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때까지 그 모든 일의 터전이 될 세상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그 약속의 증표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사이에 있을 무지개를 보시고 노아와 하신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이후

창세기 9장 18-29절에는 홍수 이후 노아의 가정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노아는 포도나무의 과실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어서 그것을 취할 정도로 마셨고 그만 벌거벗은 채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함이 보았고 그는 밖으로 나가 다른 두 형제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마도 함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며 형제들 앞에서 아버지를 조롱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이후 깨어난 노아는 일어난 일들을 알고 함의 아들을 저주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언적 성격을 지닌 저주였는데, 함에 대해서는 그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반면 셈과 야벳에 관해서는 복을 예언하였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 9:26-27)

노아가 함을 저주하고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함의 행동에서 죄와 뱀의 후손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죄가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죄가 남아 있는 현실을 본 노아는 함의 자손 가나안을 저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노아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경건한 셈의 후손 가운데 태어나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창 9:26) 이전에 경건한 셋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보존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셈의 후손들을 통해 그 약속이 전해지며 보존될 것입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이후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세상에는 다시 악이 기승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벨탑”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그들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하늘까지 닿을만한 탑을 건축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의 악한 계획을 가로막으셨기 때문입니다.

셈의 후손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벨탑을 건설하는 데에는 함의 후손들이 주로 역할을 했지만, 여기에는 셈의 후손들도 참여하였습니다. 또 셈의 후손들 가운데에도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수 24:2,14 참조). 물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신들만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이어가면서 또 다른 면에서는 지역의 다른 신들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셈의 후손들 가운데 깊이 들어온 불신앙은 “여자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셈의 후손 데라의 집안을 불러내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일의 중심에는 아브람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3절을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브람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둘째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과 셋째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큰 민족은 나라의 백성들이며, 땅은 그 백성들이 살아갈 터전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은 그 나라 백성들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곧 이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주권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실 때, 하나님은 아브람 편에서의 동의를 구하며 진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또는 아브람 편에 어떤 조건을 요구하시며 그 조건을 아브람이 이루면, 복을 주겠다는 식으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람아, 네가 내 명령을 잘 지키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람을 선택하셨고 그에게 복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뒤로 한 채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인간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만을 전적으로 의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여러 가지를 붙잡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도 함께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출발하여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가나안에서 그의 믿음은 많은 시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곧 이어 그 땅에 큰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계속해서 머물러있기 어려운 상황이 찾아온 것입니다. 또 함께 하란에서 나온 롯이 비옥한 요단 들이 있는 가나안 동쪽으로 떠나가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람과 사라가 늙어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람은 다메섹에서 얻은 종인 엘리에셀을 자식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셨으니, 이제, 저의 집에 있는 이 종이 저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하늘의 수 많은 별을 보여주시며,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늘의 수 많은 별들을 보여주시면 다시 한 번 약속을 지키실 것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땅에 대한 약속도 지키실 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임을 믿고 들어왔으나 그 땅에는 이미 아모리 족속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람은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중간을 쪼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잠든 중에 여호와께서 타는 횃불로 나타나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17-18)

이처럼 하나님께서 횃불로 자신을 나타내셔서 쪼갠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브람 당시 사회에서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킬 것을 서약하는 행위였습니다. 언약의 두 당사자가 함께 피가 흥건한 짐승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언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쪼개진 짐승처럼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약속하는 의식입니다(렘 34:17-20; 출 24:7 참조). 따라서 하나님께서 횃불로 자신을 나타내셔서 쪼갠 짐승 사이를 지나가신 것은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쪼갠 짐승들처럼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신 언약을 확실히 지킬 것을 확신시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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