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7:1-14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다(삼상 4:1-11)
사무엘상 4장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르게 된 때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고 엘리의 아들들이 예배를 멸시하고 온갖 가증한 죄악에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를 때려 징계하셔서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깨우시고 돌이키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 징계를 받게 되면 그들이 아무리 깊이 잠들어 있더라도 깨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믿음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번에는 블레셋 군대와 첫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사 4천명이 죽임을 당하자(삼상 4:2),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다가 그것을 앞세워서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자 하였습니다(삼상 4:3-4). 이것은 참된 신앙을 미신으로 바꾸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매를 맞고 경고를 받았을 때에 회개해야 했습니다. 자신들의 소위를 돌아보면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를 회개하고 은혜를 간구하는 대신, 언약궤를 곁에 두고 전쟁을 하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허망한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약궤는 그런 목적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성막의 지성소에 놓여진 궤였습니다. 언약궤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과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여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다스리시고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는 언약의 상징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지는 않고 언약궤만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을 다하여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 언약궤를 이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삶의 현안을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수단화하고 신앙을 수단화하는 것은 신앙을 미신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수단으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수단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표이지, 그것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모두 신앙을 수단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20년 동안 기럇여아림에 두셨다(삼상 7: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수단으로 만들어서 언약궤를 들고 전쟁에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언약궤를 빼앗겼고,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두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 언약궤를 아스돗의 다곤 신전에 두었는데, 다음 날에 다곤 신상이 넘어져 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다곤 신상의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서 문지방에 놓였습니다. 또한 아스돗에는 독종의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급히 언약궤를 가드와 에글론으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어김없이 독종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언약궤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전히 돌려보내게 되었습니다(삼상 5:11).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광을 지키시고 이방인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지경인 벧세메스로, 그리고 다시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 지역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졌습니다(삼상 7:1).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돌아온 후 20년 동안 언약궤가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언약궤를 20년 동안 성소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이것은 일종의 징계의 기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예배의 복을 거두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경멸히 여기고 언약궤를 함부로 수단으로 만들어버린 것을 두고두고 돌아보고 근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사모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하”는 “애통하다(lament)”라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언약궤가 성막으로 돌아오지 못하여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지 못하고 지내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은 곤고해지고 회개하는 심령을 가지고 애통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기도하다(삼상 7:3-14)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가나안의 문화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백하게 금한 우상을 각 가정에 두고 그것을 음란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아스다롯과 같은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되 그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고 그분만 섬기라고 끊임없이 설교했습니다(3-4절). 또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여 온 백성들과 함께 여호와 앞에 물을 붓고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5-6절). 사무엘은 이것이 이스라엘이 다시 사는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준비하는 것인 줄 알고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7절).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8절) 하고 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20년 동안의 사무엘의 설교 사역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에 사무엘은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9절). 그때 여호와께서 응답하셔서 블레셋 진영에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10-11절).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었을 때,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 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도우신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본래 에벤에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매를 맞아서 언약궤를 빼앗기고 3만 4천 명이 죽임을 당했던 지명이었습니다. 그곳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회복시키신 것을 기념하는 이름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13절).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아주셨습니다(13절).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성읍들, 곧 에그론에서 가드까지의 땅을 되찾았고,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평화가 있게 되었습니다(14절).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목적입니까 수단입니까? 우리에게 예배는 목적입니까 수단입니까?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합니다(6절).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회복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할 때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고 블레셋의 진영에 큰 우레를 발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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