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1.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 : 자기중심성
작년 여름 한 신문에 “지갑 60만원, 운동화 70만원… 명품에 빠진 10대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한 고등학생은 주말마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몇 달에 한 번씩 그렇게 명품을 산다고 합니다. 힘들게 번 돈을 명품 구입에 다 쓰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자, 간단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멋있어 보이잖아요.”
이 학생은 아마도 명품 신발과 옷이 없다면 자신이 멋있지 않다고 생각하겠지요? 학교에 가는 것도 싫어지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회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명품 신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체면, 또래 압력에 관한 것인데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는 것입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다 명품 신발을 신으면 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도 명품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기사 후반부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 명품 소비가 청소년들의 과소비 풍조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범죄에까지 손을 대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학생이 체면 때문이든지, 친구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든지, 또 다른 이유가 있든지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 그는 남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 생각, 의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외모에 대해서, 내가 한 말에 대해서, 나의 형편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것들에 대한 적당한 호기심을 넘어서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심한 경우 길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고 나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의견과 판단을 두려워하기 시작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우리는 그 사람에게 조종을 당하게 됩니다. 즉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작동하게 됩니다.
매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은 생각만 해도 피곤합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시작됩니다.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같아,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라고 생각되며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의 원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사랑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고 자신을 숨기려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내가 통제할 수 있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대상과의 관계에 집착합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간 관계를 깨뜨리는 중대한 두 가지 문제는 결국,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지나치게 생각하든지, 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공통점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나치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즉 두 가지 문제는 결국 하나의 문제입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사람을 우상으로 숭배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크게 생각하고 두려워할 때 우리는 사람을 우상으로 숭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깨진 인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아니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두려움 + 사랑”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마땅한 두려움을 갖되,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이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크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작게 생각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크게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작게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성경적이고 올바르며, 또한 인간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유익을 풍성히 누리는 인간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이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겠지만, 우리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고 덜 사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상대방을 내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바르게 회복된 인간 관계는 사람을 덜 필요로 하고 더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마땅히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를 먼저 드렸는데요. 이어서 깨진 인간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수치심이라는 두려움
깨진 인간관계의 원인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두려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요. 첫 번째는 수치심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치부를 알게 되면 나의 수치를 드러내고 망신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지요. 이런 수치심은 언제 생겼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즉시 우리 안에 생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즉시 그들은 수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가리고 숨기려 하였지요. 이런 수치심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갖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에게서 자신을 감추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죄인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수치심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범죄하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서로를 사랑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합니다. 사실은 내가 아주 형편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솔직히 내놓지 못하고 꼭꼭 숨기려 합니다.
우리는 수치심의 문제를 내가 나 자신을 별로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낮은 자존감에 있다는 것이지요.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 인정받을 만한 사람인데,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러움을 숨기려 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길 원합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바로 “가면”입니다. 위선을 택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가면 뒤에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나의 모습을 숨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치심의 원인이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가면을 쓰고 숨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3. 거절감이라는 두려움
수치심과 밀접하게 연관된 또 다른 두려움은 남들이 나를 거부하고, 비웃거나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두려움, 즉 거절감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조종당하는 가장 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신명기 1:16-17에서 모세는 재판장들에게 공정하게 판결하라고 말합니다. 외모를 보지말고, 귀천을 따지지 말고, ‘사람의 낮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부유한 지주가 재판을 받으러 왔습니다. 재판장이 보니 자기와 집안 사람들이 덕을 많이 본 지주였습니다. 앞으로도 이 지주에게 도움받을 만한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피고가 재판장이 원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때 재판장은 피고에게 조종당할 수 있습니다. 부유한 지주는 크게 보이고 하나님은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거절감에 대한 더 좋은 성경의 예는 바로 사울 왕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 사울 왕은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좋은 가축을 가져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의 불순종을 책망하자, 그는 죄를 자백하면서 이런 핑계를 댑니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 15:24). 사울은 백성들의 인정과 거절에 민감했습니다. 백성들이 자기보다 다윗을 더 칭찬하자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했지요. 백성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던 사울은 하나님보다 백성들을 크게 생각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백성들의 요구를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매우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태어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내가 원하는대로 나를 바라봐 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봐 두려워합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또래압력을 느낍니다. 나는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존재감 없는 주변인이 되고, 무시당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또래 문화가 요구하는 것에 나를 맞추고 그에 맞게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은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른들 역시 남들을 보고 그들의 비유에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의해 조종당하게 됩니다. 오직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조종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람을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대할 때, 진정한 인간 관계의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관계를 맺으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말과 권면을 해줄 수 없게 됩니다. 그 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사랑으로 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비록 듣기 싫더라도 꼭 필요한 권면을 해줄 수 있겠지요. 만일 교회의 지체들이 사랑의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서로가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분별력 있는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겠지요.
4. 결론
잠언 29장 25절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애써보지만, 올무에 걸린 것처럼 우리는 관계에 실패하고, 지쳐버립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 우리는 안전합니다. 하나님을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의무를 행할 때 우리는 바른 인간 관계,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진리와 사랑으로 하나 되는 복된 인간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본 내용은 "사람이 커 보일 때 하나님이 작아 보일 때"(에드워드 웰치, 개혁주의신학사)와 동일한 책으로 진행된 임승민목사님(담장너머교회)의 특강 "관계수업"의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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