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요한복음 4장 43~54절
읽을말씀
“그 아버지가 그 시각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이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그 때임을 알고, 그 자신과 그의 온 집안이 믿었다”(요한복음 4장 53절).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후, 다시 갈릴리 가나 지역으로 돌아가십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전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곳입니다. 2~4장에 걸쳐 다룬 이야기들, 1) 가나의 혼인잔치, 2) 참 성전이신 예수님, 3) 참된 탄생, 그리고 4) 참된 예배는 이제 5) 가나에게 일어난 두 번째 표적을 통하여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그것은 “생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예수님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그곳은 높임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갈릴리로 향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분봉왕 헤롯을 섬기는 관리였습니다. 이러한 그에게 큰 어려움이 있었는데, 바로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와서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주 냉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48절). 오히려 예수님은 주변에 있는 모든 갈릴리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바로, 그들이 단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만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갈릴리의 불신앙을 책망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신하는 다시 한번 예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그 이상의 어떠한 표적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이때 왕의 신하는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다시 자기 아들에게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종들이 와서 말하였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 왕의 신하는 종들에게 아들이 “낫기 시작한 때”를 물었습니다. 그때는 “일곱 시”(오후 1시)였는데, 이는 예수님이 그에게서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 사실은 왕의 신하의 믿음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전에 그의 믿음이 단지 “표적을 보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생명”이 되신 것입니다.
[생각하기]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율법 아래 있던 시대는 끝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요 2장). 새 시대를 여신 예수님이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어둠의 자녀들을 빛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4장에 걸쳐 일어난 표적과 사건들은 모두 ‘참된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가나로 돌아오셔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표적은 예수님만이 참된 생명이심을 보여 줍니다. 생명이신 예수께서, 새로운 시대 가운데 생명을 회복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단지 표적이 아니라, 그 표적을 일으키신 분,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처음 왕의 신하는 다른 갈릴리 사람들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표적과 기사만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다른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분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는 천사도, 하늘의 불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의 별도 없었습니다. 단지 말씀이신 분의 말씀만이 있었습니다. 그때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참된 생명을 온전히 맛보았습니다.
믿음이란, 어떠한 표적이나 기적을 기대하는 일이 아닙니다. 또 믿음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결과가 어떠하든지) 그 믿음의 대상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는 것”입니다. 비록 “삶이 우리의 바람대로 풀리지 않을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숨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는”(참고, 제럴드 싯처, “하나님의 뜻”)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 때로는 넘어지고 흔들릴지라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아무런 가치 없고, 볼 품 없는 믿음이라 할지라도, 이를 기뻐하시며 받아주시는 그리스도의 긍휼함으로 참된 생명을 맛보고, 삶 가운데 주님을 더욱 깊이 아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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