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우리의 일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1.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찾은 정체성은 바벨탑과 같이 허무합니다. 결국 중단되고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는데요. 우리의 일이나 직업, 성취와 성공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해줍니다. 복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줍니까? 먼저 복음은 내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알려줍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죄와 허물이 많은 죄인임을 알게 합니다. 동시에 복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과 은혜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셨다고 말해 줍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하지요.
이 복음이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내가 죄와 허물이 많은 죄인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진정으로 겸손하게 합니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본래 내 안에 신뢰하고 의지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힘들지만 절망하거나 무너져 내리진 않습니다. 성공했을 때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인 것을 알기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고,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는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를 줍니다. 비록 세상에서 내가 약하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나의 “좋으신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기에, 더이상 일이나 성취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일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칭의 교리’를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이 진리는 우리에게 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줍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직업적인 성공에서 구원(자존감과 자부심, 행복과 안정)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로지 높은 보수와 지위를 보장하는 자리에 연연하며 비뚤어진 방식으로 그런 일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일에 기대어 자신을 입증하고 정체성을 지키라는 압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줍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인정받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얻기 위해 다시 애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은 단순 노동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와 고상해 보이는 일거리를 부러워하는 마음가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제 일은 종류와 상관없이 인류를 값없이 구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 된 까닭입니다. 루터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온갖 선한 것들을 넘치도록 가졌으니,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전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즐거이 주님을 좇아 이웃에게 나를 주지 못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2. 복음은 일을 이웃을 사랑하는 수단이라고 가르쳐준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여러분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작가 레스터 데코스터는 일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인간 삶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를 말해줍니다.
“일은 저마다 남들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게 하며 … 다른 이들 또한 이 편에 유용해지게 만드는 틀이다. 우리는 심고 하나님은 그걸 키워서 인류를 하나가 되게 하신다. … 지금 느긋이 앉아 있는 의자를 생각해 보라.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 한번 대답해 보라. 어떻게 목재를 얻겠는가? 숲에 가서 나무를 잘라올 참인가? 그러자면 먼저 필요한 연장을 만들어야 한다. 자른 나무를 실어올 적당한 차량도 준비해야 한다. 통나무를 켤 제재소와 이리저리 운반할 길도 건설해야 한다. 한마디로 평생, 아니 죽었다 깨나도 의자 하나 만들지 못한다. … 일주일에 40시간이 아니라 140시간씩 일한다손 치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지금 누리고 사는 상품이나 서비스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조차 해결하지 못한다. 급여로 살 수 있는 게 그걸 버는 시간에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일은 특정한 작업에 쏟아부은 노력보다 월등히 큰 결과를 낳는다. 모두가 당장 일을 그만둔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사태가 벌어지겠는가? 문명화된 삶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찬장에서 음식이 사라지고 주유기에 기름이 떨어질 것이다. 순찰을 도는 경찰관의 모습을 거리에서 더이상 찾아볼 수 없고, 화재는 저절로 꺼질 때까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통신과 대중교통이 끊어지고 각종 공공서비스도 먹통이 될 것이다. 살아남은 이들은 불가에 옹송그리고 둘러앉았다가 동굴에 들어가 잠을 청할 테고 짐승 가죽을 벗겨 옷을 삼을 것이다. 야생과 문명을 가르는 요소는 그저 ‘일’뿐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하기에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의 종류가 아니라 그 일을 노련하고 능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주요한 방법은 바로 ‘능숙한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주신 목적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가장 잘 순종하는 방법은 그저 일을 해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일을 제대로, 훌륭하게 해내는 것입니다.
3. 복음은 우리의 일을 탁월하게 해야 할 동기를 부여한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더이상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또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만일 여러분이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것은 구두를 수선하기 전에 기도를 한다거나,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한다거나, 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헌금을 한다든가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그리고 가장 탁월하게 구두를 수선하는 것이 첫 번째 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구두를 수선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일을 매우 기뻐하시고 그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일이 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로시 세이어즈의 말입니다. “교회가 이지적인 목수에게 흔히 권면하는 내용은 여가 시간에 술에 취하거나 난잡하게 놀지 말라는 것과 주일을 성수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에게 정작 해야 할 말은 이런 것이다. 당신의 종교가 당신에게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훌륭한 식탁을 만드는 일이라고.”
그리스도인이 탁월하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통해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주님께 합당한 섬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과 탁월함으로 일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팀 켈러는 “일에 있어서의 탁월함과 능숙함은 곧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일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일에 우리의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일을 했다고 해서 그 결과가 항상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우리의 섬김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일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수단이 되지만, 또한 일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도로시 세이어즈는 “일을 하는 사람은 일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 자체에 기여한다는 말은 내가 하는 일 그 자체가 주는 만족과 기쁨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청소를 하는 사람은 깨끗하게 하는 일 자체를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지식을 가르치는 일 자체를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내가 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고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이 일 자체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일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일을 기쁘게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4.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에베소서 6장 5-9절은 종과 주인의 윤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종과 주인이라고 하면 우리의 상황과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당시 상황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 볼 때, 또 이 교훈의 본질적인 측면을 생각할 때 본문은 우리 시대의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에 관한 말씀으로 충분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주인이든 종이든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하듯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에게 순종할 때 그리스도께 하듯 순종해야 하고, 주인은 자신과 종 모두가 주님의 종인 것을 기억하고 종을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을 할 때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를 이 자리로 부르셔서 이 일을 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일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 자유에 대해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지요.
첫 번째는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각자의 자리로 부르신 것이라고 정말 믿는다면, 우리는 주인이라고 교만해지지 않고, 종이라고 비굴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들은 예화인데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일을 시키시려고 천사 셋을 불렀습니다. 첫 번째 천사에게는 왕의 황금홀을 주면서 나라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천사에게는 황금 주판을 주면서 큰 회사를 경영하라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천사에게는 뚫어뻥을 주시면서 화장실을 청소하라고 하셨다는 거에요. 세 천사가 모두 “네”라고 대답하고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예화를 말씀하시던 목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세상으로 내려가는 세 천사들의 마음가짐이 과연 달랐을까요?” 왕으로 부름을 받은 천사는 자신이 더 우월한 존재여서 하나님이 그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했을까요? 화장실 청소로 부름을 받은 천사는 자신이 더 열등한 존재여서 그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일을 수종드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영광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종의 가치는 주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주인이 진짜 주인이 아니라, 그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진짜 주인이시고,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부르실 권리가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게 감사하며 일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쉴 수 있는 자유입니다. 우리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하라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쉬라고 명령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쉼을 두려워합니다. 쉬면 경쟁에서 뒤쳐지고, 결국 내가 지키려는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지요. 십계명의 4계명은 단순히 일주일에 하루를 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게 쉬어도 결코 실패하지 않고 망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짜 주인이시고, 그분이 우리에게 쉬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정말 쉬어도 괜찮은 겁니다.
세 번째는 일의 결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신뢰할 때, 우리가 두려움 없이 조바심을 내지 않고 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일을 할 때에도 이 일이 성공할지, 나의 수고에 따른 보상을 다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께 일하듯 마음을 다하여 일만 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8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이 무슨 일을 행하든지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 앎이니라.” 우리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록 이 땅에서 내 일에 대한 보상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될 때에도, 내가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감사하며 일할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몰라주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인정하시고, 상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자유 없는 삶, 억압 받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면 우리는 자유로울까요? 아니요, 다른 무엇의 노예가 될 뿐입니다. 성공의 노예가 되든지 돈의 노예가 되겠지요.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억압하고 두려움을 줄 뿐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그분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일하라고 하셨습니까?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하듯 눈치보지 말고 즐겁게 열심히 그 일을 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소중한 일입니다. 그 일에 감사하고 그 일을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쉬라고 하셨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두려움 없이 쉬십시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상주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행한 모든 일에 대하여 주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진짜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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