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대상 29:11).
장로교회가 믿는 믿음의 내용을 가장 체계적으로 진술한 것은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문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로교회가 믿는 믿음의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다른 복음주의 교회들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로교회는 복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교회를 다른 복음주의 교회와 구별시켜주는, 특징적인 믿음의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종교개혁 기념 주간에 우리가 생각해보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물론 장로교회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장로교회가 믿는 신앙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장로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게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주권(sovereignity)이라는 말은 최고의 권위를 영구적으로 행사하는 최고 통치자(sovereign)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주권적이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여러 왕들 가운데 한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인 주권을 가지고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유일하신 왕이십니다. 최고의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주인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인간의 모든 행위와 결정을 초월하여 그분이 뜻하신 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시는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시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창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만물을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이러한 순종은 창조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열 가지 재앙에서, 하나님은 개구리와 파리, 메뚜기를 보내셨다고 물러가게 하십니다. 애굽 온 땅에 치명적인 우박을 내리시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 고센 땅에만 내리지 않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생명까지 주관하십니다. 요나서에서도 우리는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명하셔서 정확히 요나가 바다에 떨어질 때 요나를 삼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작은 벌레를 보내셔서 요나를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가려주었던 박넝쿨을 시들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주권적으로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의존하고 하나님 앞에서 순종할 의무가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존재로 서 있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왕이시다
다니엘 4장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고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요, 꿈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라는 대제국을 세운 느부갓네살을 낮추셔서, 그로 하여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단 4:25)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느부갓네살이 궁전 지붕에서 바벨론을 내려다보며,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 4:30)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31). 하나님께서 꿈에서 말씀하신 대로 느부갓네살은 광인처럼 들에서 짐승처럼 지내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그때 느부갓네살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단 4:34-35).
대제국을 건설한 느부갓네살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일상적인 선택과 계획도 주권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잠언 16:9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야고보서 4:15의 말씀처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에 있어서 왕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은 무엇보다도 구원의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나타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처음과 끝 모두를 주관하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구원이 인간의 공로나 선택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초한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1:4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에서와 야곱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던 두 형제 중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습니다. 로마서 9:11에 따르면, 이 선택은 인간의 행위나 의지가 아닌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6:44에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구원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8-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교리가 우리에게 주는 유익
지금까지 성경을 따라 하나님의 주권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장로교회는 이렇게 창조와 섭리, 구원과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권자이심을 일관되게 강조합니다. 이것은 모든 세계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 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 피조물로서 우리의 의지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을 성취하시는데, 그때 우리의 참된 의지와 선택을 통해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선택 중 하나로 작동하는게 아니라 두 가지 모두에 의해서 작동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책임 있는 선택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계획을 성취하시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힘써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느 4:9, 이사야 38장, 사도행전 27장).
다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저 먼 하늘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시는 분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행 17:22-27), 그들이 섬기는 제단에 ‘알지 못하는 신’이라고 적힌 제단도 있다는 것을 보고,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신에 대해서 내가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신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천지의 주재이시니,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시고, 인류를 온 땅에 거하게 하실 때 그 경계와 수명까지도 정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런 분이신 것은 사람들이 언제라도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면서, 그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할 때 나와 가까이 계신 분이 아니라 멀리 계신 분처럼 생각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를 무가치하고 작게 느껴지게 하거나 낙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격려하고 우리가 돌봄을 받는다고 느껴지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스릴 수 없는 것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다스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분이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셔서 우리 삶의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고, 우리에게는 주권이 없어서 그 어느 것 하나 붙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하나도 없고,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참으로 안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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