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항
이 효과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사람 속에 예견(豫見, foreseen)된 그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딤후 1:9; 딛 3:4,5; 엡 2:4,5,8,9; 롬 9:11). 사람은 이 효과적인 부르심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림(생명)을 받고 새롭게 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수동적이다(고전 2:14; 롬 8:7; 엡 2:5). 성령으로 살림과 새롭게 됨을 받으면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되고, 이 부르심 안에서 제공되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요 6:37; 겔 36:27; 요 5:25).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효과적 부르심(내적 부르심)과 좁은 의미의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적 사역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능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의 은혜를 입은 자들만이 자원함으로 능동적(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분을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생 위해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십니다. 구원을 위한 복음 약속과 복음 초청(부르심)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 같은 전인격적(全人格的) 변화의 결과로 이 변화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자원함으로(능동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 속에 있는 것과, 사람이 장차 행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미리 내다 보시고 아시는 어떤 것을 근거하여 그를 불러 구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알고 믿는 것은 반 펠라기우스 주의자들과 알미니안 주의자들의 비성경적인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에 있어서 사람은 어떤 협력이나 노력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효한 소명과 거듭나게 하심은 하나님의 주권적 단독 사역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노력으로 영적으로 살아날 수 없는 전적으로 부패하고 영적으로 전적인 무력한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영적인 생명, 즉 새 생명으로 살리움을 받고 전인적(全人的)으로 새롭게 되기까지는 전적으로 수동적입니다. 성령의 효과적(혹은 내적) 부르심을 받아 중생되어야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실제적으로 의식적으로 그리고 자원적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되고 부르심 안에서 제공되는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이 효과적인 부르심(중생)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람 속에서 예견된(미리 보여진) 그 어떤 것에서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순전히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으로 부르시어 영적으로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계획과 구속 언약과 은혜 언약에 근거한 전적 은혜의 사역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고 놀랍고 영광스런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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