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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10장 효과적인 부르심(4)

3항

영아 시기에 죽는 택함을 받은 영아들은 그가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며 구원을 얻는다(요 3:8; 행 4:12; 눅 18:15,16; 행 2:38,39; 요 3:3,5; 요일 5:12; 롬 8:9). 말씀의 사역에 의한 외적인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그 외의 모든 선택된 사람들도 그러하다(요일 5:12; 행 4:12).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5-17)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선택은 성인들(adults)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고 영아들에게까지 확대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복음서들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들을 포함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8:15-17). 예수님은 믿는 부모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통상적으로 성령께서는 믿음으로(by faith)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라나서 신앙을 고백하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하나의 수단에 매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에서 그가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요 3:8 참조). 3항은 이것을 말합니다. “영아 시기에 죽는 택함을 받은 영아들은 그가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으로 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며 구원을 얻는다. 말씀의 사역에 의한 외적인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 그 외의 모든 선택된 사람들도 그러하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앞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할 것을 내다보시고 우리를 예정하셔서 구원하신다는 교리를 믿을 경우 영아기에 죽는 그의 자녀들이나, 정신적 장애를 가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자녀들의 죽음에서 아무 소망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자들이 모든 영아기에 죽는 아이들과 모든 정신 장애로 인해 외적 부르심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택함을 받은 자들만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나며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 얻게 되는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선택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신앙고백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성인들(adults)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그가 성취하신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다 오직 한 분 중보자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비록 영아기에 죽은 그의 자녀들일지라도 언약 백성인 믿는 부모에게서 잉태되고 출생한 어린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들로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이 문제에 관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믿을만한 빛을 주는 성경 구절들은 찾을 수 있습니다(예: 눅 18:15-16; 삼하 12:23; 행 2:38,39; 겔 16:20,21). 우리는 영아기에 죽은 택함 받은 영아들이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아기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은 택함 받은 영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3항이 고백하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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