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항
하나님은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의 죄를 계속 용서하신다(마 6:12; 요일 1:7,9, 2:1,2). 그리고 비록 그들이 칭의의 상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다 할지라도(눅 22:32; 요 5:28; 히 10:14; 요 10:28; 빌 1:6; 요일 2:19), 그들은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부성적 진노 아래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그들의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할 때까지 하나님의 얼굴 빛이 그들에게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시 89:31-33, 51:7-12, 32:5; 마 26:75; 고전 11:30,32; 눅 1:20).
“내가 저희에게 저희에게 영생을 영생을 주노니 주노니 영원히 영원히 멸망치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터이요 또 또 저희를 저희를 내 내 손에서 손에서 빼앗을 빼앗을 자가 자가 없느니라.”(요 10:28)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이 칭의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전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입니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할 때 단번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에 의해 즉시 되어지는 칭의는 완전하며 최종적입니다. 믿는 자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된 칭의는 해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칭의의 즉각성, 완전성 그리고 최종성을 믿습니다. 개혁파 교회의 이 칭의 교리에 대하여 비판하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예로 든다면, 첫째, ‘칭의가 신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포함하는 것이며 즉각적으로 단번에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라면, 칭의를 받은 신자는 더 이상 죄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5항은 이 문제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칭의의 즉각성, 완전성, 그리고 최종성을 믿으면서 동시에 우리는 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목전에서 범하는 우리 자신의 죄 때문에 우리 자신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 ‘칭의는 죄 사함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이루신 완전한 의를 우리에게 옷 입혀 우리를 의로운 자로 여겨 받아 주신 것입니다. 이 칭의가 신자의 행위로 인하여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면, 신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며, 어떤 선행도 필요하지 않고, 어떤 죄를 짓든지 칭의는 취소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칭의관은 신자를 방종에 인도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2항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4문이 간략하지만 정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셋째, ‘개혁주의 칭의관은 우리가 다 우리의 몸을 따라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인데, 이에 대해서는 앞서 인용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2항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4문이 답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참된 구원의 신앙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살전 1:3)와 성령을 좇아 행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갈 5:22-23)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 감사의 열매가 없는 자는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가 아닙니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마 12:33). 의롭다 함은 받는 믿음은 행위(열매)에 의해 알려집니다.
넷째, ‘성경은 죄인이 은혜로 구원 얻는다고 말하는데, 칭의를 하나님의 법정적 선언적 행위로 말하면, 그것은 은혜를 제외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칭의의 완벽한 근거를 마련하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의를 전가시키신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의지하게 하는 방편인 믿음 자체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롬 3:23-24, 5:18-19; 고후 5:21). 칭의의 근거를 값없이(신자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성부와 성자께서 비싼 값을 치르셨음) 이루어 주시고 그것을 전가시켜 믿는 자들의 것으로 여겨 의롭다 해주신 것이 다 은혜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값없는 칭의는 방종에 이르게 하여 윤리적 덕과 선행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전한 칭의의 복음을 반대하여 ‘이신칭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한 도덕적 구속을 해이하게 만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legalism, 律法主義)자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기 때문에 신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율법(도덕률)폐기론(Antinomianism)자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로마서 6장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으심에 연합되었으면,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로마서 6장 1절부터 23절까지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 봅시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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