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항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된 자들은,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성화되어 간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덕(virtue, 功德, 덕, 효능)을 통해(고전 6:11; 행 2:32; 빌 3:10; 롬 6:5,6),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요 17:17; 엡 5:26; 살후 2:13) 실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화되어 진다. 몸 전체(the whole body, 온몸)에 대한 죄의 지배권(dominion, 통치권)이 파괴되고(롬 6:6,14), 여러 가지 정욕들은 점점 더 약해지고 억제되며(갈 5:24; 롬 8:13; 골 3:5), 그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은혜 안에서 점점 더 살아나고 강건하게 되어(골 1:11; 엡 3:16-19; 벧후 3:13,14), 그것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참된 거룩을 실천하게 된다(고후 7:1; 히 12: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성화는 구속 적용 단계들(혹은 순서들) 가운데 하나의 국면(aspect)입니다. 성화는 구속 적용의 다른 단계들인 유효한 부르심, 중생, 칭의, 그리고 양자됨의 단계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구속 적용의 모든 단계들이 다 성화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지만, 특별히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은 성화와 특별히 관련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는 중생에 대한 별도의 한 장을 갖지 않고 효과적 부르심과 성화에 포함시켜 다루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을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면 유효한 부르심 안에 중생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0장(효과적인 부르심) 1항과 2항을 보면, 1항, 2항 그리고 3항에서 거듭남(중생)이라는 말과 중생에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작성자들은 13장(성화에 관하여)에서 좁은 의미의 중생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된 자들은 그들 안에 창조된(created)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성화되어 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화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의지와 행위의 점진적 변화 과정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성화는 점진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특별히 신약 성경에서) 성화를 점진적 과정이 아니라 단번에 이루신 확정적인(definitive)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효과적인 부르심, 중생, 칭의, 그리고 양자됨을 반복할 필요가 없는 단번에 성취된 하나님의 사역(행위)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본질상 단회적이며 확정적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상당한 부분이 성화도 확정적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고전 1:2) 자들을 “하나님의 교회”라 부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서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성화를(성도라는 그들의 정체성을) 효과적인 부르심, 중생, 칭의와 대등한(co-ordinated) 것으로 여기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디모데후서 2:21, 에베소서 5:25,26절, 사도행전 20:32과 26:18을 보면, 성도들을 씻음과 거룩함을 받은 자들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거룩하게 된 자들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를 점진적인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이해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초에 일어나는 어떤 확정적(결정적)인 사역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아 거듭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성도의 정체성을 이루는 어떤 확정적 행위와도 관련이 있음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확정적 성화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화를 구속 적용의 다른 모든 단계들과 관련시켜 이해해야 하지만, 특별히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과의 밀접한 관련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궁극적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롬 8:29). 칭의의 목적도 성화의 완성 곧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롬 8:30). 하나님의 유효한 부르심을 받아 우리가 거듭날 때에, 중생은 효과적인 부르심의 열매(결과)인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 성화의 개시(inauguration)입니다. 중생 시에 거룩의 씨가 심어지게 되고, 일평생 이 성화의 씨와 기초와 뿌리에 근거하여 성화의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