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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13장 성화(6)

1항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된 자들은, 그들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성화되어 간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덕(virtue, 功德, 덕, 효능)을 통해(고전 6:11; 행 2:32; 빌 3:10; 롬 6:5,6), 그리고 그들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에 의해(요 17:17; 엡 5:26; 살후 2:13) 실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성화되어 진다. 몸 전체(the whole body, 온몸)에 대한 죄의 지배권(dominion, 통치권)이 파괴되고(롬 6:6,14), 여러 가지 정욕들은 점점 더 약해지고 억제되며(갈 5:24; 롬 8:13; 골 3:5), 그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은혜 안에서 점점 더 살아나고 강건하게 되어(골 1:11; 엡 3:16-19; 벧후 3:13,14), 그것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참된 거룩을 실천하게 된다(고후 7:1; 히 12:14).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성화의 삶은 중생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중생과 성화의 밀접한 관계와 중생과 성화의 참된 본질(true nature)을 바르게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구속의 적용은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자들을 그의 아들 그리스도 곧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가 성취하신 모든 은덕을 받도록 부르십니다. 성령께서 그의 전능의 은혜의 사역으로 이 복된 영광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전적으로 오염되었고 부패해 있습니다. 죄는 사람의 전 존재에 영향을 미쳐 욕구의 원천인 마음과 성정과 동기는 왜곡되고 부패되어 있습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의 지성적·감성적·의지적 행위와 마음은 죄의 지배 아래 있으며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습니다(벧후 2:19; 창 6:5; 렘 17:9). 죄로 오염되어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온갖 악한 생각과 행동이 나옵니다. 죄의 오염과 부패는 인간 존재의 모든 부분에 침투되어 있으며, 부패에 감염되지 않은 부분이나 지체나 기능은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나 다른 어떤 피조물들의 어떤 도움으로도 죄와 죽음에서 인간을 건져내지 못합니다.


사람이 죄로 인해 죽었다고 해서 활동이 정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어 하나님에 대해 무감각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방향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마음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을 행합니다.


이렇게 전적으로 부패하여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순복과 신뢰입니다. 전적 불신의 심정과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에게 순복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영혼 전체의 행위가 가능하겠습니까? 육신에 있는 자들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요 6:65; 롬 8:8; 고전 2:14). 그래서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중생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과 은혜로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해 주십니다(겔 36:26; 고후 5:17).


중생은 성령의 능력 있는 은혜의 사역으로 영혼 안에(개인의 전 존재의 중심 또는 핵심에) 일으켜 주신 근본적 변화 곧 새롭게 해 주심입니다. 새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영혼의 본성에 새로운 기초(새로운 삶의 원리)를 존재하게 하신 것입니다. 영혼 깊이 뿌리 내려진 변화는 전인(全人)과 삶의 모든 관계 안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지배적 성향이 근본적으로 새롭게 되었으며, 생각과 느낌과 의지와 성품이 새롭게 되어 복음의 초청에 응답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그분과의 교제 안으로, 그분의 모든 은덕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은 먼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려고 새 생명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중생에서 새 생명이 주어지면 그 생명이 곧 바로 활동하게 됩니다. 후기 개혁파 신학에서 이것을 가리켜 중생이라고 말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단독 행위로서의 시초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반면에 회심(conversion)은 중생 안에서 사람에게 주어진 은혜의 결과로서 사람에게 믿음과 회개의 작용을 일으키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논리적으로 중생은 회심에 선행합니다. 중생과 회심(믿음과 회개)은 논리적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분리할 수 없습니다. 중생을 나무라고 하면 회심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요 3:3,5).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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