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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13장 성화(7)

3항

그 전쟁에서 남아 있는 부패성이 한동안 크게 우세할 수도 있지만(롬 7:23), 성화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부터 계속해서 힘을 공급받으므로 중생한 부분이 이긴다(롬 6:14; 요일 5:4; 엡 4:15,16). 그리하여 성도들은 은혜 안에서 성장하며(벧후 3:18; 고후 3:18),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화를 온전히 이루어간다(고후 7:1).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3항은 성화를 이루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전투적 삶에서 “남아 있는 부패성이 한동안 크게 우세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탄식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화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계속해서 힘을 공급 받으므로 중생한 부분이”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생한 부분이 이긴다”는 진술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여러 가지 잘못된 추론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신자 안에 중생된 부분과 중생되지 아니한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된 부분’이라는 말은 중생된 사람의 어떤 분리된 특정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은 한 사람의 신자 개인의 전 존재의 중심(핵심, core)이 새롭게 되는 결정적 변화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새롭게 된 신자의 중심(또는 주도적 성향)의 근본적이며 결정적인 변화는 전인(全人)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부분은 중생되었으나 어떤 부분은 중생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생과 성화는 전인적(全人的)으로 영향을 미치는 은혜의 사역이기 때문에, 사람의 어떤 부분과 기능을 완전히 중생되고 성화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중생과 성화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부분은 없습니다. 신자는 절반만 중생된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중생된 부분은 새 사람이고 중생되지 못한 부분은 옛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옛 사람은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하여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와 함께 정죄를 받았으며 죄의 오염과 부패를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대속적 죽으심에 연합하여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공효로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죽고 장사되며(롬 6:6; 갈 2:20; 골 2:11-12), 그럼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한지 못하게 되고(롬 6:8,11-12),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3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옛 사람은 이미 죽었으며, 이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 생명을 받은 새 피조물이요 새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말합니까? 옛 사람은 이미 죽었지만 거듭나 새 사람 된 신자 안에 옛 사람적 죄의 습성과 죄악된 욕망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억제하고 죽이고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 사람을 벗은 것입니다.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새 사람 된 우리는 옛 사람적 모든 죄악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엡 4:22-24; 골 3:5-10). 사람의 진정한 회개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8문).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말하는 “육체의 욕심”은 옛 사람적 죄악된 욕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반면에 “성령의 소욕”은 거듭난 신자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의 능력과 은혜를 계속적으로 공급받아 거룩과 선을 지향하는 새 사람의 욕구를 말합니다.


신자의 삶 가운데서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욕심’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중단 없는 전쟁에서 부패의 잔재(옛 사람적 죄성과 죄악된 습관과 죄악된 욕구)가 잠시 동안 우세할 수도 있지만,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생된 신자 안에 계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과 은혜의 공급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기만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 전쟁에서 남아 있는 부패성이 한 동안 크게 우세할 수도 있지만(롬 1:23), 성화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부터 계속해서 힘을 공급받으므로 중생한 부분이 이긴다”(롬 6:6-14)라고 한 것입니다.


신자들의 심령과 생활에서 죄악의 강력한 세력을 느낄 때에도 그 세력과 위협은 전체 전투에서 회복 할 수 없는 결정적 패배를 한 세력의 패잔병의 최후 발악과 같은 것임을 알고 최후 승리를 확신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끝까지 계속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화시켜 주시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부터 계속해서 힘을 공급받으므로 중생한 부분이 이긴다.”라고 했습니다.


중생되어 성화의 은혜 아래 있는 신자는 죄악의 세력이 아무리 집요하고 강력하게 공격하여도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계속해서 힘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중생되어 성화의 은혜 아래 있는 신자는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싸우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과 은혜의 역사로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은혜 안에서 성장하며(벧후 3:18; 고후 3:18),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화를 온전히 이루어가야 합니다”(고후 7:1). 신자의(몸과 영혼으로 된 전인(全人)으로서의) 성화의 완성은 금생에서는 완전히 이룰 수 없습니다. 전인의 성화는 몸의 부활 때에 완전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는 성령의 은혜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벧전 1:2). 계속적인 성령의 능력과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도 힘써 우리의 성화를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빌 2:12-13).


그러므로 성화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인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신자인 우리의 의무입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 3:5).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3-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자유롭고 선한 양심으로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2문). 이 죄와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롬 6:12-13; 갈 5:16-17; 엡 6:11; 딤전 1:18-19; 벧전 2:9,11).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베푸시는 성화의 능력과 은혜의 역사(행위) 안에서 항상 자타의 성화를 위해 전심과 전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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