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항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은혜로 죄인은 자신의 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본성과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에 배치되는 위험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더럽고 혐오스러운 것임을 보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음으로, 자기의 죄를 심히 슬퍼하고 미워하여, 모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겔 18:30,31, 36:31; 사 30:22; 시 51:4; 렘 31:18,19; 욜 2:12,13; 암 15:15; 시 119:128; 고후 7:11), 하나님의 계명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고자 결심하며 노력하게 된다(시 119:6,59,106; 눅 1:6; 왕하 23:25; 요 14: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출생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중생된, 거듭난, 새로운 출생을 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일어난 죄에 대한 근본적 변화입니다. 이 말은 거듭난 신자는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보다 계속해서 죄 가운데서 죄의 노예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새로운 출생은 죄에 대한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죄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죽고 장사되며, 그럼으로써 육신의 악한 소욕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그분께 감사의 제물로 드리게 됩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3문)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된 신자들과 죄의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가르치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골 2:20-3:14; 갈 2:20). 로마서 6:1-14은 그리스도인의 죄와의 관계를 가장 자세하고 명확하게 말해 줍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여 죄에 대해서도 죽게 합니다(2절).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죄에 대해 죽은 우리는 더 이상 죄 안에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에서(죄의 왕권적 지배와 정죄에서) 해방되었다는 위대한 진리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자들이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8문) 참된 회개의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과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전의 우리, 곧 아담 안에 있었던 우리 자신을 가리킵니다. 이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롬 6:4; 고후 5:7). 옛 사람은 이미 죽고 없는데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 또는 옛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옛 사람”이 아직 살아 있으니까 죽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옛 사람적 죄성과 죄의 습관과 죄의 욕망과 죄의 행위는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떠나고 죽이고 버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토록 싸워야 할 전투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옛 사람이 이미 죽었고 우리가 이미 죄에서(죄의 왕권적 지배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의 지배를 더 이상 받지 말고(“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옛 사람적 죄성(특히 자기 중심성)과 죄의 습성(구습)과 죄의 욕심과 죄의 행사를 벗어버리라는 말입니다(엡 4:22). 죄에 대하여 이전에 가졌던 관계를 단절하고,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서 새 생명 새 본성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 개혁 신앙 선조들은 ‘죄 죽임’(mortifying sin, mortification)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옛 사람”은 본성적으로 아담과 연합했던 우리 자신을 가리킵니다. “새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우리를 말합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의 몸의 지체로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죄악된 육체의 욕심과 행실을 죽이면 우리는 더욱 더 성령을 좇는 신령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엡 4:22-24; 갈 5:16; 롬 8:1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0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마음으로 즐거워하고(시 51:8,12; 롬 5:1-2, 14:17),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롬 6:10-11; 갈 2:19-20; 시 119:6,106; 요 14:21, 15:9-11).”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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