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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16장 선행(3)

4항

이 세상(in this life, 현세, 금생)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순종에 이른 자들이라도, 여공(餘功)을 쌓거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마저 다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눅 17:10; 느 13:22; 욥 9:2,3; 갈 5:17).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행을 함에 있어서 우리의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 행한 선행들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행하여 공로를 쌓는 것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의무상 해야 할 의무도 다 행할 수 없습니다. 4항은 이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in this life, 현세, 금생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순종에 이른 자들이라도, 잉여 공덕(여공)을 쌓거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마저 다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성도들일지라도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의 명하신 의무보다 더 넘치게 하여 여공(정한 이상의 선행으로 잉여 공덕, supererogation)을 쌓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다 완전히 행할 수 없지만, 다 행한 후에도 자신은 무익한 종으로 하여야 할 일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며, 최선을 다해 행한 것마저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2문은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라고 묻고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해야 합니다(신 27:26; 갈 3:10).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사 64:6).” 어떤 특출한 성도라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그가 행한 최고의 행위라도 하나님의 정확하고 공의로우신 심판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가장 훌륭한 행위라도 그 행위자와 행위의 불완전성 때문에 상 받을만한 공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3문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마 5:12; 히 11:6), 그래도 우리의 선행은 아무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상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눅 17:10; 딤후 4:7-8).”


신자의 선행들에 대해 하나님의 정확하고 공정한 보상이 있지만, 그것은 선행에 의한 공로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수 없고 다만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한 최상의 선행이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성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자들이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이상의 선행으로 여공을 쌓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그들의 의무조차도 해야 할 만큼 완벽하게 다 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부족한 종임을 인식하고 고백해야 합니다(눅 17:10).


사람이 자기의 선행으로 그의 몫으로 부과된 공덕들을 다 이루고, 더 많은 선행으로 남는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선행이란 하나님의 계명(율법)에 따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강령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본질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함에 있어서 한 없이 부족한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선행을 결코 자랑해서는 안 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성화가 금생에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 역시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한 선행이라도 하나님 아버지에게 용납을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대속 공로와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중보 사역을 의지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행위를 드려야 합니다(히 13:20,21; 엡 2:18; 골 3:17).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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