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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16장 선행(4)

5항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행위들로도 하나님의 손에서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만한 공로를 세울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들과 장차 받게 될 영광 사이에 큰 불균형이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으로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전에 범한 죄들의 빚을 하나님께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롬 3:20, 4:2,4,6; 엡 2:8,9; 딛 3:5-7; 롬 8:18; 시 16:2; 욥 22:2,3, 35:7,8).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했을 뿐이며 여전히 무익한 종에 불과하다(눅 17:10). 왜냐하면 우리가 행한 것들이 선하다면, 그 선행들은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며(갈 5:22,23), 그것들이 우리에 의해 행해질 때 그것들은 많은 연약과 불완전으로 더러워지고 섞여져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사 64:6; 갈 5:17; 롬 7:15,18; 시 143:2, 130:3).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사 64:6)


 

우리가 하는 모든 선행들은 모두가 우리의 창조자와 보존자이신 하나님께서 먼저 베풀어 주신 그분의 선하심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 1항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성적 피조물들이 그들의 창조자이신 그분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들은 이에 대한 성과(fruition)로서 하나님을 그들의 복락과 상급으로 모실 수 없었다. 다만 하나님 편에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언약의 율법으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우리가 선행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는 모두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미 빚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베풀어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의 빚을 조그만큼이라도 갚으려는 감사의 심정으로 선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설사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다 할지라도 아무런 공로로 인정될 수 없는데, 하물며 불완전한 우리의 행위가 어떻게 하나님에게 공로로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며, 여전히 의무조차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한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 의가 될 수 없으며 어떤 공로를 쌓는 것이 될 수 없고 우리가 행한 선한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고 죄로 오염되어 있는 것이라면, 선행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우리에게 선행을 명령하시며, 우리의 선행에 대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상 주시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은 우리의 선행의 공로 때문에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3문).


선행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잠 12:14, 13:13, 10:22,27,29, 16:31, 19:16, 20:7, 10:17, 28:18, 25:21,22, 10:6; 시 33:18,19, 34:37, 37:5,6, 84:12,13, 94:14, 14:6; 출 20:5,6; 사 26:7; 마 6:1,2,16,20, 5:12, 6:3,4; 눅 6:37,38, 19:16,17; 고후 5:10; 고전 3:8; 갈 6:7; 빌 3:14; 히 11:6; 계 14:13, 22:12). 동시에 성경은 선행이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눅 17:9,10; 롬 5:15-18, 6:23; 엡 2:8-10; 딤후 1:9; 딛 3:5).


신자의 선행을 공로로 주장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신자는 그의 삶 자체와 삶에 관련된 전부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당연히 드릴 것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자는 자기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선을 원하고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신자가 행한 최고 최선의 행위라도 금생에서는 불완전하고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장 5항이 잘 간추려서 가르쳐 줍니다. 신자의 최선(최고)의 행위들로도 구원(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만한 공로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선행들과 장차 받게 될 영광 사이에 큰 불균형(큰 격차)이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첫 사람, 인류)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에서 그로 더불어 언약(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창조 언약, 아담과의 언약, 혹은 행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행위 언약의 내용에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하면 종말론적 생명인 영원한 생명의 영광과 복락에 이르게 해 주시고, 불순종하면 죄와 영원한 비참에 떨어지게 될 것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이 언약 자체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1항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언약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언약 자체가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아담이 언약하신 그대로 순종했다 하더라도 그의 순종이 공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순종은 다만 감사의 표현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선행과 상(賞)의 문제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행한 선행들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상을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상(갚아주심, 상 주심)은 금생과 내생에, 영육 간에, 나와 관련된 모든 것(가정, 사회, 교회)과 모든 사람(특히 자녀손 천대까지)에게 하나님의 전능하고 신비로운 섭리로 주시는 보상입니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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