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항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이 행한 일들은, 비록 그것들이 일 자체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일 수 있고, 자신과 남에게 유익할 수도 있을 것이다(왕하 10:30,31; 왕상 21:27,29; 빌 1:15,16,18). 그러나 그것들은 믿음으로 깨끗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창 4:3-5; 히 11:4,6),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방법으로 행한 것도 아니며(고전 13:3; 사 1:1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올바른 목적에서 행한 것도 아니다(마 6:2,5,16; 롬 14:23). 그러므로 그것들은 죄악된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기에 적합하게 만들 수 없다(학 2:14; 딛 1:15; 암 5:21,22; 호 1:4; 롬 9:16; 딛 3:5; 잠 15:8, 28:9). 그렇지만 그들이 그 같은 행위들을 무시하여 행하지 않는 것은 더욱 죄악된 것이며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이다(시 14:4, 36:3; 욥 21:14,15; 마 25:41-45, 23:3).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0-31)
중생과 성화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듯이 성화와 선행은 불가분의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 (혹은 세속적인) 의미가 아닌 영적인(혹은 신학적인) 의미의 선행들은 중생 시에 성령께서 새롭게 해주신 새 본성에서 나오는 신령한 행위들입니다. 이 영적인 선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도 일반적인(세속적인) 의미의 선행들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선행들은 성화의 열매로서의 영적 의미의 선행은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범죄 행위와는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비록 이러한 행위들을 중생의 열매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일반은혜(보통은혜, common grace)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일반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나 ‘축복’이란 말은 구원의 은혜인 특수은총(특별은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은 멸망하게 될 사람들에게 일반은혜라고 하는 것들이 어떻게 은혜와 복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반은혜’나 ‘복’이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선하고 자비하신 섭리 사역(자연과 사회의 보존 섭리 사역)과 관련시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일반은혜를 특별은혜인 구원의 은혜와 구별해서 말한다 할지라도, 은혜와 복의 개념을 혼동시켜 교회의 세속화를 초래하게 될 위험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위험의 경고를 잘 경청하면서 동시에 ‘일반은혜’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를 위한 자연과 사회의 보존은 하나님의 언약(노아와의 언약, 일반은혜 언약, 보존의 언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의 보존은 구원받은 자나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다 참여해야 할 일입니다. 인류 공동체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기 때문에, 이 공동선에 참여하는 행위는 일반적 의미의 선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되지 않은 사람들의 행위는(외면상으로 아무리 선하게 보여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라는 영적 뿌리가 없기 때문에, 중생된 신자들만이 행할 수 있는 참된 선행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선행들이나 불신자들의 선행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불완전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공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로서 그가 지으신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역행하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의 악행들은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에게는 보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9-10).
우리는 참된 선행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과, 선행과 공로와 상급의 관련성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일반적(세속적) 의미의 선행과 중생된 신자의 성화의 열매인 영적 의미의 선행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공로를 쌓고 그에 따르는 상을 받기 위한 동기와 목적으로 선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크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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