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항
참된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다양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약해지고 일시 중단될 수 있다. 이런 일은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보존하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양심을 상하게 하며 성령을 근심시키는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거나, 갑작스럽고 격렬한 어떤 유혹에 의해서나,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도 어두움 속에서 빛이 없이 걸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될 때 일어날 수 있다(아 5:2,3,6; 시 51:8,12,14; 엡 4:30-31; 시 77:1-10; 마 26:69-72; 시 31:22, 88:1-18; 사 1:10).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명과,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심령의 신실성과, 의무에 대한 양심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그것들로부터 성령의 활동으로, 이 확신은 적당한 때에 회복될 수 있다(요일 3:9; 눅 22:32; 욥 13:15; 시 78:15, 51:8,12; 사 50:10). 또한 성령의 사역에 의해 그 기간 동안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게 된다(미 7:7-9; 렘 32:40; 사 54:7-10; 시 22:1).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8)
4항은 “참된 신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다양한 방식으로 흔들리고 약해지고 일시 중단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1)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소홀히 하는 것.
2)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3) 성령을 근심시키는 어떤 특별한 죄에 빠지는 것.
4) 갑작스럽고 격렬한 어떤 유혹.
5)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는 것.
6)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신자들이라도 어두움 속에서 빛이 없이 걸어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됨.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참된 신자들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약해지고 일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명과,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심령의 신실성(sincerity of heart)과, 의무에 대한 양심(도의심, conscience)을 온전히 잃지는 않는다. 그것들로부터 성령의 활동으로, 이 확신은 적당한 때에 회복될 수 있다. 또한 성령의 사역에 의해 그 기간 동안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게 된다”(4항).
존 머리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4항의 진술과 비슷한 관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확신의 싹은 확실히 신자가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에 함축되어 있다 … 진정한 신자의 믿음이 아무리 약할지라도, 그가 받는 유혹이 아무리 맹렬할지라도, 그 자신의 상태에 대하여 그의 마음이 동요한다 할지라도, 그의 의식(意識, consciousness)에 관한 한 결코 믿음 이전의 상태에 있지 않다. 신자의 의식은 전체 반경에 있어서 불신자의 의식과 다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가장 얕은 간조 때에도 신자의 의식은 불신자의 수준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존 머리의 「조직신학」 Ⅱ, 276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 4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들이라도 그들의 구원의 확신이 여러 방식으로 동요되고 감소되며 일시 중단될 수 있다. 이런 일은 확신의 보존을 소홀히 함으로 양심을 상하게 하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어떤 특별한 죄에 떨어짐으로, 어떤 갑작스럽고 격렬한 유혹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므로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도 어두움 속을 걸어가도록 하심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참 신자들은 결코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씨와, 믿음의 생명과,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심령의 성실함과(진실함 sincerity), 의무에 대한 양심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성령의 활동으로 이 확신을 적당한 때에 회복될 수 있다. 또한 성령의 사역에 의해 그 기간 동안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받게 된다.”
구원 얻는 믿음은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복음 약속 곧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굳게 붙잡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하고 직접적인 활동은 구원을 위해 복음이 증거하고 초청하고 약속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신(또는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가 나의 유일한 중보자요 구원자이신 것과 그가 이루신 구속이 나의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논리적으로는 구원 얻는 믿음에 따라오는 후속적이고 반사적인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주된 행위와 구원의 확신이 언제나 시간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 얻는 믿음이 발생하는 그 순간에 신자의 의식 속에 즉각적으로 새겨질 수 있습니다. 확신의 싹은 신자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 또는 구원 얻는 믿음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참 신자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확신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신자는 구원 얻는 믿음을 가진 자이지만, “확신을 가지기까지 오래 기다리며, 많은 어려움을 인해 갈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3항). 그러나 모든 신자는 “비범한 계시가 없이도 통상적 방도들을 바르게 사용함으로 확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자기의 부르심과 선택을 확신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3항).
그리스도인에게 확신(복음의 확신 또는 구원의 확신)은 참으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이 확신을 가짐으로써 “그의 마음은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로 가득 차게 되며, 순종의 의무에 대한 힘과 즐거움이 증대됩니다”(3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8장(은혜와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자신의 확신의 약함과 동요로 염려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믿음과 확신에 관하여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실패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infallible assurance)이 참된 믿음에 변함없이 동일하게 수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유보조항, 제한을 두는 단서)을 믿음의 대상에 대한 확신의 결여로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참된 신자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친히 계시하신 그의 말씀이 진리인 것과, 이 말씀이 증거하는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와 구원자이심을 믿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은 결핍될 수 있으며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관적 확신의 결핍과 요동됨은 믿음의 객관적 대상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확신의 결핍과 변동은 믿는 자의 구원에 불확실성이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자의 구원의 확실성은 믿는 자의 주관적 확신의 견고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의 확실성은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에 근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는 자들이 확신을 가지는데 소홀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들은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이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배우고 확신한 가운데 거하기 위해 은혜의 통상적 방도를 근실히 사용해야 합니다. 신자가 확신을 소유함으로 누리게 되는 복과 은혜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3항 참조).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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