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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하나님의 법(9)

작성자 사진: 병철 안병철 안

7항

앞서 언급한 율법의 용도들은 복음의 은혜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잘 조화된다(갈 3:21). 그리스도의 영께서 사람의 의지를 복종하게 하시고 능력 있게 하셔서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시는 바를 자유롭고 기꺼이 행할 수 있게 하신다(겔 36:27; 히 8:10; 렘 31:33).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은 하나님의 법을 도덕법(도덕적 율법), 의식법(의식적 율법), 그리고 재판법(사법적 율법)으로 구분합니다. 도덕법은 오늘날까지 구속력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6항은 하나님의 율법의 유용함(기능, 용도)에 대해서 말합니다. 마지막 단락인 7항은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복음의 은혜 아래서 사는 삶)과 서로 대항(대립)하는 관계에 있지 않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잘 조화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의 은혜의 바른 구분과, 이 둘의 조화되는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쉬운 과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고서는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복음이 제시하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며 그분께 감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한 참된 선행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행위가 아니면 선행이 되지 못합니다. 선행이란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그리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 것만을 선행이라 하며,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사람의 계명에 근거한 것은 선행이 아닙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1문) 하나님의 율법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로 하여금 선행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복음에 합당한 순종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존 머리 교수는 성경 윤리에서 율법과 복음의 바른 관계를 말하면서 “율법이 없는 사랑은 뼈가 없는 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John Murray, Principles of Conduct: Aspects of Biblical Ethics(Grand Rapids: Eerdmans, 1957, pp. 11-26).


율법과 복음의 은혜와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율법’이라는 말을 ‘복음’ 또는 ‘복음의 은혜’와 관련해서 사용할 때에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는 우리가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할 참으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구원의 과정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성화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구원 받기 전과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인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죄인은 의롭게 되기 위해 율법에 순종함으로 선행을 할 필요가 없으며, 그 대신에 죄인은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의 은혜만을 신뢰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도 율법은 회심한 신자에게 어떤 종류의 행위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인지 보여 주는 규범적 기능을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율법의 제3의 용도 또는 규범적 용도라 불려 왔습니다. 청교도들은 율법의 제3의 용도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9장 6항은 “비록 참 신자들이 행위 언약으로서의 법 아래 있지 않아서 그것으로 의롭다 함을 받거나 정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유용하다. 그것은 생활의 규칙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그들의 의무를 알려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것에 따라 행하도록 지도하고 명령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규범적 용도로서의 율법의 기능은 복음의 은혜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잘 조화되는 것이라고 19장 7항에서 말합니다. 일부 율법의 용도들은 복음의 은혜와 상충되지 않고 잘 조화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그리스도의 영께서 사람의 의지를 복종하게 하시고 능력 있게 하셔서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시는 바를 자유롭고 기꺼이 행할 수 있게 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덕법은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고(인간 창조 시에), 시내산에서 돌판에 기록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 속에 다 기록되었기 때문에, 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장 7항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약속하신 바로 그 하나님의 영이십니다(겔 36:27). 에스겔은 새 언약 신자들(new-covenant believers)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게 될 것을 멀리서 내다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들 안에 두시고,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실 수 있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하셨던 이 약속이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이루어진 것을 히브리서 8:8-10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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