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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23장 국가 위정자(3)

4항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딤전 2:1,2), 그들의 인격을 존경하며(벧전 2:17), 그들에게 세금과 기타 공과금을 납부하고(롬 13:6,7), 양심을 위해 그들의 합법적 명령들에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백성들의 의무이다(롬 13:5; 딛 3:1). 신앙이 없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위정자가 가지는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순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벧전 2:13,14,16). 이 점에 있어서는 교역자들도 예외가 아니며(롬 13:1; 왕상 2:35; 행 25:9-11; 벧후 2:1,10,11; 유 8-11). 하물며 교황일지라도 위정자들이 통치하는 영토들 안에서 위정자들 위에나 그들이 다스리는 백성 누구에게도 어떠한 권세나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다. 교황이 위정자들을 이단으로 판단하거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구실을 내세워 그들의 통치권과 생명을 빼앗을 권한은 결코 없다(살후 2:4; 계 13:15-17).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2).

 

23장 마지막 항인 4항에서는 정부의 공직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처신에 대한 성경적 명령을 요약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부(국가 위정자들)를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통치를 받는 자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배워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다른 모든 중요한 문제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서도 밝히 말해 줍니다.


첫째,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1-2).


둘째, 우리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나 교회에서 권위를 가진 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 우리는 ‘권위’(authority)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국가 공직자들의 의무를 이해하고 그 의무 수행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국가 공직자들에게 세금과 기타 공과금을 납부해야 합니다(롬 13:6,7). 우리가 낸 세금이 언제나 바람직하게 쓰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마땅히 세금과 공과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양심을 위해 국가 공직자들의 합법적인 명령들에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롬 13:5; 딛 3: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네 가지 순종의 영역을 잘 알고 실행해야 합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칭찬하고 더 힘쓸 것을 권하고 격려함)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국가 공직자들)에게 하라”(벧전 2:13,14).


4항 마지막 부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잘못, 즉 성직자의 면책권과 로마 교황이 세속 권세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4항은 국가 위정자에게 복종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어떤 법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 그 법에 불복종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의 법체계는 불완전한 법률들을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편함과 고통스러움을 가하는 법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국가 공직자들에게 불복종할 핑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복종이 옳을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복종이 옳을 때가 언제인가 말로 대답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불복종이 옳을 때는 어떤 권위자든(가정, 사회, 국가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금하시는 것을 하라고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 우리는 불복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이런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 정부 관리들이(산헤드린 공회)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금지할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라고 말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심한 박해를 받았으며, 바울이 감옥에서 그렇게 많은 옥고를 치른 주된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 인간 권위자들에게 불복종해야만 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 공직자들의 명령이 아무리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도 그런 것 때문에 불복종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정부의 소득세 정책이 아무리 부당하게 생각될지라도 그것이 불복종하는 데 대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일단 부과된 세금은 내고, 법적으로 부당한 징세에 대해 호소하고 정정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권세자들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불복종의 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이들을 다 죽이라는 바로의 칙령을 거부한 히브리 산파들은 자신들이 행한 불복종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출 1:15-21). 느부갓네살 왕의 우상에 경배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풀무불에 들어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단 3:12-18)와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은 권세자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복종했습니다. 아합의 신하 오바댜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공급하여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했습니다. 오바댜의 이 용기 있는 행위는 아합과 이세벨에게는 불복종한 일이었으나 하나님에게는 순종하는 일이 된 것입니다(왕상 18:12-13). 독일 나치 정권 하에서 유대인들을 색출하여 다 죽일 수 있도록 협력하라는 나치(Nazi)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유대인들의 생명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행동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불복종을 한 예들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부 공직자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손실과 답답함과 위험이 따른다 할지라도 국가의 법력에 잘 따라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감염병 방역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불편하고 답답해도 세밀하고 정확하게 잘 준수해야 합니다. 자타의 생명과 건강뿐만 아니라 국가의 안녕과 경제 발전과 세계 만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감염병 방역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법을 어긴 몇몇 기독교 종교 단체들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마치 교회가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의 진원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이며, 교회를 욕되게 하고 복음 전파를 크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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