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항
그리스도께서는 이 보편적인 보이는 교회에 현세에서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을 불러 모으고 온전케 하기 위하여 직분자들과 말씀들과 하나님의 의식들을 주셨다. 그리고 친히 하신 약속을 따라 그분 자신의 임재와 성령으로 이 모든 것들을 효과적으로 이루신다(고전 12:28; 엡 4:11-13; 마 28:19,20; 사 59:21).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8)
3항은 이 보이는 교회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gathering)과 온전케 하시는 것(perfecting)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도(evangelism) 또는 가르쳐 온전케 함(edification, 교화)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직분자들”(ministry)과 “말씀들”(oracles)과 “의식들”(ordinances)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씀들"은 성경을 의미합니다. 신구약 성경은 교회에 주신 것으로서 교회가 전해야 할 메시지의 원천과 성도들의 신앙과 본분의 규칙입니다. “의식들”(ordinances)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기능들로 정해주신 것인데, 예배와 가르침과 (instruction), 성례(sacraments)와, 권징(discipline, 징계, 훈련)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목적(성도들을 불러 모으시고 온전케 하시려는)을 이루시기 위하여 교회 안에서 교회의 기능들(예배, 가르침, 성례, 권징 등)이 효과적으로 계속 수행될 수 있도록 그분 자신의 임재와 성령으로 계속 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가 주신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을 통해 이렇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두 가지 사역, 즉 성도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과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일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불러 모으는 것은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효한 부르심을 받아 교회 공동체에 연합한 성도들이 개인적 및 공동체적인 성장(성숙)과 인격과 삶의 변화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됨(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닮음)이 없으면, 전도의 문이 막히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주신 사역인 예배와 설교와 성례와 권징이 그가 세우신 교회의 직분자들 (특히 설교자들과 교사들)을 통해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성도들이 온전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온전케 되지 않고서는 복음의 빛과 향기가 가리워져서 불러 모으는 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성도들을 불러 모으는 일과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직분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지역 교회마다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가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목사들의 인격이 경건성(영성)과 지성과, 윤리적(도덕적)으로 온전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서는 교회의 기능(사역)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특별히 목회자들은 시무하는 교회가 교회답게 되고 성도들이 온전케 되도록 잘 인도하고 본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써 주님께서 친히 교회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일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만을 진심으로 소원하고 전력해야 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 24:45,46).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우리 그리스도인들, 특히 교회의 직분자들은 각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위해)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더욱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3-11).
우리는 각자 개인적인 믿음과 덕을 위하여 노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인 신앙고백과 덕스러운 삶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개인적 신앙과 덕을 위해, 그리고 공동적 신앙과 덕(공동선)을 함양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개인적 경건과 덕성 함양을 힘써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공동성과 공동선을 위해 지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모든 공동체들과의 관계에서 특히 국가의 공직자들의 권위에 올바른 관계를 가져 그 공권력의 역할인 사회의 공동선을 진작하고 보장하는 사회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개인 이기주의와 교회 이기주의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면서 전체의 공공성과 공동선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여지면, 교회(그리스도인들)는 인간의 연대성과 사회성의 실현에 무관심한 것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적 연대성(공공성)과 공동선(덕)은 인권 신장이나 경제적 이익을 초월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영적 보화(그리스도를 믿고 닮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를 널리 나누어 주는 최고선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러므로 교회는 최고선에 주력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공동선에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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