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성도의 교통(2)
- 병철 안
- 2023년 10월 19일
- 4분 분량
2항
공적으로 고백한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함과, 그들 상호간의 건덕(교화, edification)을 위한 영적 봉사들을 수행함과, 그들이 가진 저마다의 능력들과 필요들에 따라 외적인 짐들을 서로 덜어주는 일에 있어서 거룩한 교제와 교통이 유지되어야 한다(히 10:24,25; 행 2:42,46; 사 2:3; 고전 11:20). 이 교제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대로, 어느 곳이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어야 한다(행 2:44,45; 요일 3:17; 행 11:29).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2항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공적으로 고백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함과, 서로서로 세워주기 위한 영적 봉사의 수행과, 짐을 서로 져주는 일을 함으로 성도의 교통(교제)이 유지되게 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교통)에 여러 가지 일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2항이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도들이 함께 모여 공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둘째, 성도들은 서로의 덕성 함양(건덕, 성화, 영적 장성)을 위한 영적 봉사를 행해야 합니다. 셋째, 성도들은 각자의 능력과 필요에 따라 서로의 짐을 덜어주고 필요를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다른 성도들과 연합됩니다. 이 연합의 결과로 여러 가지 의무들을 가지게 됩니다. 그 중 첫째 되는 교제의 의무는 공적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각 개인이 개인적으로나 가족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지만, 특히 주일에는 자신이 소속한 교회(지역교회)의 공적 예배에 참여하여 다른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넷째 계명은 이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서 성도의 교제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예배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지역 교회(local church) 별로 속한 성도들이 정한 장소와 정한 시간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것입니다(고전 1:2).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을 열심히 지속하였습니다(행 2:42). 나중에 일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 10:25)라고 경고했습니다. 성도의 교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공적 예배를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들이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일 때 경배와 찬미의 제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함께 예배함으로써 힘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히 10:19-25).
성도들은 서로 세워주기 위해(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 영적 장성) 영적 봉사들(spiritual services)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 영적 봉사들 가운데는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그리고 함께 주님과 주님의 은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포함됩니다. 영적 봉사는 “영적”(spiritual)인 것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인 짐들을 서로 덜어주는 일에”까지 확대되어야 합니다.(행 2:42,44,45). 자비를 베푸는 사역 (ministry of mercy)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균형 있게 잘 수행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에서 영적 봉사의 종류와 영역을 너무 좁게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교부들의 글(특히 어거스틴의 책들)과 중세의 신학자들(토마스 아퀴나스의 책들)과 영성가들의 글들과, 16세기 종교개혁자들 (특히 루터와 칼빈의 책들)과, 17세기 청교도들과 구라파 대륙(특히 화란)의 제2 종교개혁자들의 작품들, 근대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서적들을 통해 그들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영적 봉사의 범위는 참으로 장구하고 광대합니다. 영적 봉사들이 성도의 교제를 통해 계속되고 더욱 확장되며 더욱 풍요롭게 됩니다.
성령과 성경 말씀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아브라함과 다윗 등)과 신약의 사도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과도 교제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받아 전해준 진리와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참여함으로 그들과 교통하며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본질과 그 폭과 유용함을 알고 누리는 사람은 사람들 중에 가장 복 있는 자입니다.
진정한 신앙고백자 곧 진정한 신자들은 모두, 한 몸(온몸, 전신)의 머리이시며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과 교제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모든 성도들도 상호 연합하며 교제합니다. 모두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개인 신자는 성령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거룩한 보편적 교회는 성령이 지으신 것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으며 그 몸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고전 12:13-21). 그러므로 참된 모든 성도들은 모두 한 몸을 이루어 친밀한 관계와 교제를 가집니다. 각자 하나의 지체로서 받은 은사들과 은혜를 가지고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를 온전케하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받은 은사들과 은혜들을 따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 일을 ‘성도의 교제’라고 말합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머리가 하나이며, 한 성령이 그들 안에 계시며, 믿음이 하나이며 몸이 하나입니다. 그들은 한 생명에 연합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이기 때문에, 다른 지체의 고통과 번영에도 함께 합니다. 수치와 영광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성도 한 개인이나 어떤 신자 공동체가 어떤 악행으로 욕을 먹을 때에, 모든 성도들의 명예도 손상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공동체 곧 교회는 전체적으로나 개별 교회적으로나 한 몸과 같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한 몸에 연합된 지체들은 한 머리, 한 성령, 한 믿음으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지만 각기 받은 은사들과 은혜들이 다르고 의무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교화, edification)을 위해 받은 은사들과 은혜들과 직분들에 따라 함께 협력합니다(엡 4:4-6; 고전 12:4-21). 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보이는 보편적 교회의 모든 교회들과, 거기 속한 모든 개별 교회(지역 교회들)들과, 그 개별 교회들에 속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 참된 신앙고백을 하는 모든 신자들을 상대할 때에도 ‘성도의 교제’를 원칙으로 삼아 행동해야 합니다. A.A 하지는 그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김종흡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426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하나라면 교회들도 하나다. 모든 성도가 하나라면, 그리고 이 거룩한 ”교제“에 포함된다면, 성도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고백을 하는 다른 모든 사람을 성도로 인정하며,”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은 자“로 대해야 한다”(벧전 3:7).
교파들과 개 교회들과, 개별 신자들 사이에 교리와 생활의 순결성 면에서, 예배의 형식면에 있어서 차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신랑으로 하나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로 단번에 구속하신 구속의 사랑에서 하나입니다. 한 성령이 내주하시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화시키시는 사랑에서 하나입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의 유업을 받을 자들이라는 점에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머물러 순례자의 삶을 사는 동안에 가능한 한 한 몸의 지체들로서 받은 은사들과 지혜들을 따라서 사적 및 공적 의무들과, 사람들의 외적(外的, out-ward things) 및 내적(內的)인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서로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