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항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지는 이 교통(communion)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그리스도의 신격의 실체에 참여자들로 만들거나, 어느 면에서든지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긍정하는 것은 불경건하고 신성모독적이다(골 1:18; 고전 8:6; 사 42:8; 딤전 6:15,16; 시 45:7; 히 1:8,9). 성도들로서 그들 서로 간의 교통은, 각 사람이 가진 그의 물건들과 소유들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빼앗거나 침해하지 않는다(출 20:15; 엡 4:28; 행 5:4).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마지막 항인 3항은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와 관련된 잘못된 견해들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님을 그 안에 모시고 그분의 은혜로 성화(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어져 감)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과 신성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베드로후서 1:3-11을 보면, 4절 하반절에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인간성의 성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신성에 참여한다는 것이 아니고,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고 하신 말씀이 우리의 인격과 삶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버리고 멀리 피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의 본질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을 닮은 어떤 면, 곧 참된 지식과 의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회복되어감(성화)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과 교제할 수 있도록 참된 지식과 거룩한 감성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유한한 지성과 도덕성과 의지를 가진 유한한 인간입니다. 전지성과 완전성은 하나님만 가지신 비공유적 속성임으로 이런 속성들은 인간에게 전달될 수 없고 인간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성의 본질은 자존적이고 영원하고 완전한 하나님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 이외의 또 다른 자존적이고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자존적이고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3항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가지는 이 교통(communion)을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그리스도의 신격의 실체에 참여자들로 만들거나, 어느 면에서든지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긍정하는 것은 불경하고 신성모독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은 결코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최종적 구분(the ultimate distinction between the creation and creature)을 없애는 (abolition, 또는 제거하는, removed)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 피조물의 구분을 없애는 것은 심각한 신학적 오류입니다. 이런 범신론적 관점(pantheistic views)은 오늘날 뉴 에이지(New Age) 사상에도 나타나지만, 이런 사상은 17세기 영국에도 유행되고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6장 3항은 이같은 신학적 오류를 지적하며 경고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교통(교제)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격도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한 본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딤전 6:16).
성도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는 창조주-피조물의 구분을 없애고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는 것(신화,神話, deification,신격화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합일된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이 구원받아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는 그분의 신비한 몸의 지체들로 연합되어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 개개인은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한 지체(부분)로 전체와 연합된 부분(지혜)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결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요 15:5). 그리스도의 전체 몸의 한 부분(지체)으로 존재하는 모든 성도들은 전체 몸과 그 머리와 지체들과의 연합과 교통 가운데 존재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존재하면서 개인적으로 도덕적 완성이나 개인적 선행에 주력할 것이 아니라, 전체 몸의 한 지체로서 온몸을 위해 한 지체로 해야 할 일을 바르게 알고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지체답게 온 몸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를 바르게 알고, 우리 개인을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교회의 한 지체로)알고 존재해야 합니다.
3항 마지막 부분은 성도들의 교통(교제)에서 잘못 생각하기 쉬운 두 번째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성도들로서 그들 서로 간의 교통은, 각 사람이 가진 그의 물건들과 소유들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빼앗거나 침해하지 않습니다.” 3항의 마지막 부분은 신자들의 개인적(사적) 소유권의 원리를 확인합니다. 신자들이 성도들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모든 성도들과 연합하고 교제한다고 해서 개인들의 소유권을 무시하고 공동 소유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적 소유권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하는 단체로 만드는 것(communal society)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2:44-46에 나오는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상황 가운데 있는 교회들에게 그대로 따라야 할 표준(normative)으로 삼으라는 의도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 8계명은 사적 재산권을 함의(implied)합니다. 사도행전 5:4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의 소유를 지킬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도들로서 그들 서로 간의 교통을, 각 사람이 가진 그의 물건과 소유들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빼앗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가르칩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