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항
각 성례에서 표(sign)와 그 표로 표시되는 것 사이에 영적 관계 혹은 성례적 연합이 있다. 그러므로 한 편의 명칭들과 효과들이 다른 편에도 돌려진다(창 17:10; 마 26:27-28; 딛 3:5).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2항은 성례(세례와 성찬)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함에 있어서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표(sign)는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거나 맛볼 수 있는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세례의 외적 표지(sign)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입니다. 성찬의 외적 표지는 눈으로 볼 수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빵과 포도주입니다. 이 표지들이 가리키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언약의 은택들입니다. 이것이 성례의 요지입니다. 표지와 그 표지가 나타내는 것 사이에 성례적 연합(sacramental union)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성례로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례(세례와 성찬)에서 표(sign, 표지, 표시, 표상, 표호)와 그 표(혹은 상징,symbol)로 표시되는 것(나타내는 것, 의미하는 것, thing signified)을 동일시함으로써 그 두 사이에 영적 관계 혹은 성례적 연합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7:10에서 할례를 언약이라 일컫습니다.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은 만찬의 떡(빵)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잔(포도주가 담긴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것은 세례를 받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죄 사함, 의롭다함, 새 생명)을 나타냅니다(막 16:16; 벧전 3:21; 롬 6:3-4; 딛 3:5).
창세기 17:10절에서 말하는 할례는 남자의 양피를 베는 것으로 언약과는 다른 것입니다.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에게 속한 자들이 할례를 받기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이 그 언약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언약의 표로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할례를 언약으로 칭한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웨스트민스터 27장 2항에서 “그러므로 한 편의 명칭들과 효과들이 다른 편에도 돌려진다”(팡 17:10; 마 26:26-28; 딛 3: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례적 언어’(sacramental language), 혹은 ‘성례적 연합’(sacramental union)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사용된 이러한 용어들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용어들이 성례적 언어들인지, 아니면 다른 범주에 속한 언어들인지를 먼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5:5에 있는 말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연합을 가리키지만, 그 말씀은 은유(metaphor)로 표현한 것이지 성례적 연합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최후 만찬에서 주님께서 떡(빵)을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신 것과 잔을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하신 것은 성례적 연합을 나타내는 성례적 언사입니다. 이 성례적 언사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며, 은유적 의미도 있지만, 은유 이상의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성례적 언어’ 혹은 ‘성례적 연합’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의 밀접한 관계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는 기독교 역사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뉠 수 없는) 은혜의 방도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성례는 “주께 받은 것”(고전 11:23-26)을 시행하여 각 시대의 성도들에게 계속적으로 전해 주는 보이는 말씀들(visible word, 유형한 말씀들)입니다.(어거스틴, Contra Faustum XlX, 16). 성례는 전파된 복음 약속들에 대한 표(sign, 표시)와 인(seal, 보증의 날인)과 같은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으로 귀에 들려지는 복음 진리를 성례를 통해 눈으로 볼 수 있게 표시하며 보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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