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항
올바르게 사용된 성례에서 혹은 성례에 의해 나타나는 은혜는 성례 안에 있는 어떤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례의 효력은 성례를 집전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도 않고(롬 2:28-29; 고전 3:7; 요 3:5; 행 8:13-23; 벧전 3:21), 오직 성령의 사역과(마 3:11; 고전 12:13), 성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다. 이 말씀은 성례를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함께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 대한 은혜의 약속을 포함한다(마 26:27-28, 28:19-20).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3항에서 말하는 성례의 효력에 관하여 살피면서 이미 말한 성례의 정의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이 예식에서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혜택이 감각적인 표상(표, 표지)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표시되고 인쳐지며 적용되는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2문).
“성례는 복음 약속의 눈에 보이는 거룩한 표(sign)와 인(seal)으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성례가 시행될 때, 하나님께서는 복음 약속을 우리에게 훨씬 더 충만하게 선언하고 확증하십니다. 이 약속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단번의 제사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은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6문). 박형룡 박사님은 그의 교의신학 (교회론)에서 성례에 대한 하나의 모범적인 정의로서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전수경. 이상원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878쪽)에서 말한 것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성례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규례로, 이 성례에서 감지할 수 있는 표(sign, 표지, 표호, 표징)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은혜 언약의 은택들이 신자들에게 제시되고, 인쳐지고, 적용되며,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충성을 표현한다.” 이 성례에 대한 정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1항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2문의 내용을 종합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3항은 성례의 유효성에 관해 말하면서 “올바르게 사용된 성례에서 혹은 성례에 의해 전시되는 은혜는 성례 안에 있는 어떤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례의 효력은 성례를 집전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도 않고, 오직 성령의 사역과, 성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는데, 그 말씀은 성례를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함께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 대한 은혜의 약속을 포함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항이 ‘성례의 유효성’을 주로 부정적인 용어들(negative terms)로 말하지만, 동시에 매우 명확하게 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례들은 효과적이라는 점과 은혜의 방도라는 점을 분명히 진술합니다. 성례들(세례와 성찬)에 의해 은혜가 전시되며(exhibited), 주어진다(conferred)고 말합니다. “올바르게 사용된 성례에서 혹은 성례에 의해 전시되는 (제공되는, providing, 수여하는, granting)은혜는 성례 안에 있는 어떤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례의 효력은 성례를 집전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도 않고, 오직 성령의 사역과, 성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는데, 그 말씀은 성례로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함께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 대한 은혜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depend upon).” 성례의 은혜는 성례가 바르게 사용될 때에(rightly used)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worty receivers)에게 주어집니다.
성례에 의해 전시되고 수여되는 은혜는 “성례 안에 있는 어떤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성례의 효력은 집전하는 자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도 않습니다.” 성례의 유효성(efficacy, 효과)에 관하여 칼빈은 어거스틴이 말한 두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악은 표지들(signs)이 마치 우리에게 헛되이 주어진 것처럼 여겨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악은 눈에 보이는 표지들 이상으로 우리의 믿음을 높이지 않음으로써,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들을 그 표지들의 덕분으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기독교 강요 제 4권, 칼빈 지음, 원광연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352쪽). 칼빈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은혜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모든 은택에 참여자로 만드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베풀어지는 것이다. 성례에서 외형적인 표지들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경우는 그것들이 그런 은혜를 누리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그 표지들이 다른 방향으로 왜곡되는 경우에는 그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성례의 효력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모든 은택에 참여자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과 성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성례의 유효성에 대해 말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장 3항을 “올바르게 사용된 성례”(sacramental rightly used)라는 말과,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worthy receivers)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례의 효과는 “올바르게 사용된 성례에서”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게만 약속된 은혜입니다.
성례의 정당성(바르게 사용함)과 유효성은 28장(세례)과 29장(성찬)에서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바르게 사용되는 성례는 성례의 세 가지 요건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례가 정당한 성례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재료와, 바른 형식과, 바른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세례는 물을 재료로 하고 성삼위의 이름으로 준다는 성례 제정의 말씀을 사용하는 동시에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세례와 성찬을 베풀며(시행하며) 이 신앙을 가지고 받는 것이 “성례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며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9장 7장을 보면, “이 성례에서 눈에 보이는 요소들에 외적으로 참여할 때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고 11:28) 믿음에 의해 내적으로, 실제로, 그리고 참으로 그렇게 한다”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것입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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