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29장 성찬(4)

5항

이 성례의 외적 재료들(혹은 요소들, elements)을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용도에 따라 마땅히 구별해야 하는 것은 그것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때때로 참으로, 그러나 성례적으로만(sacramentally only) 그것들이 나타내는 것들의 이름으로,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불린다(마 26:26-28). 그러나 그것들을 그렇게 부른다 해도 그것들은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전과 조금도 다름 없이 참으로 여전히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을 뿐이다(고전 11:26-28; 마 26:26-28).


6항

떡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제의 봉헌으로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고 주장하는 교리(보통 이것을 ‘화체설’이라고 함)는 성경에만 반대될 뿐 아니라, 심지어 상식과 이성에도 모순된다. 그것은 성례의 본질을 뒤엎는 것이요, 이제까지도 그러하였고 현재도 다양한 미신들과, 실로 조잡한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고 있다(행 3:21; 고전 11:24-26; 눅 24:6,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5항과 6항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찬에서 성별된 빵과 포도주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성례적으로만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불립니다. 이것은 성례적 연합을 나타내는 성례적 용어입니다. 그것들을 그렇게 부른다 해도 그것들은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전과 조금도 다름 없이 참으로 여전히 빵과 포도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29장 5항). 6항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 교리를 거부합니다.


29장 6항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찬 교리(보통 화체설이라고 칭함)를 거부합니다. “빵(떡)과 포도주(포도즙)가 사제의 축성(축사)으로 혹은 어떤 다른 방식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한다는 교리(화체설)는 성경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상식과 이성에도 반합니다. 이 주장은 성례의 본질을 뒤집는 생각이며, 이제까지 여러 가지 미신과 조잡한(천박한, gross)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화체설에 대한 가장 강력한 거부의 표현입니다.


6항에서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 교리를 거부하고, 7항에서는 루터파의 견해인 공재설(共在說) 교리(doctrine of consubstantiation), 즉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in, with, and under) 육체적(혹은 육신적)으로 임재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성찬에서 그 요소들(빵과 포도주) 자체가 수찬자들의 외적 감각들에 그러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실제적이지만, 영적으로 신자들의 믿음에 제시됩니다.”(7항) 개혁주의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성찬 예식에서 결코 신체적으로 임재해 계시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이지만, 영적으로 신자들의 믿음에 제시된다고 합니다(실제적 및 영적 임재).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실제적이지만, 영적으로 신자들의 믿음에 제시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찬에 임재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이나 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칼빈의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의 신앙고백이 가르치는 성찬에 그리스도께서 실제적(real)으로 영적(spiritual) 임재하심을 성경적 성찬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은(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모든 인간의 몸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성질들처럼 어떤 제한을 받으며, 또한 한 번 하늘로 올리우셨으므로 그가 심판주로 재림하시기까지 거기에 계속 계시다는 것을(행 3:21) 전혀 의심치 않으므로, 이런 썩어질 성찬물을 빌미로 그의 몸을 다시 끌어내리거나 또는 그의 몸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식으로 상상하는 것을 부당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칼빈, 기독교 강요, 제4권, 제17장 12항 그리스도의 임재 참조)


그리스도의 몸은 공간적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시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게 하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실제로 그러나 영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모든 은택들을 받아들이게 해 주십니다.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가 성찬의 물질적 요소인 빵과 포도주 형태로 임재해 계신다든지, 빵과 포도주는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성찬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에 임재해 계신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습니다. 성례에서 상징(표)과 그 상징(표)이 나타내는 것과의 성례적 연합(sacramental union) 혹은 성례적 용어(sacramental language)에 대한 바른 성경 해석 원리에 따른 해석과 적용을 하지 않아서 이런 잘못된 비성경적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으며,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지금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장차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7문)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인성(人性)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그의 신성(神聖)과 위엄과 은혜와 성령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47문의 답)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마다 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서로 나뉜다는 것입니까?”(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8문)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은 아무 곳에도 갇히지 않고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성은 그가 취하신 인성을 초월함이 분명하며, 그러나 동시에 인성 안에 거하고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48문의 답)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비록 그의 부활의 몸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의 신성과 신성의 모든 속성과 은혜와 성령으로는 어디에나 계시고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어떤 형편에서나 무슨 일에나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성찬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와 은혜 베푸심은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영생의 양식을 공급하며 영적 장성을 위하여 특별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조회수 15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コメン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