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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36문 칭의,양자됨,성화에서 나오는 혜택들

문: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 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무엇입니까?

답: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진과,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소요리문답 29문부터 35문을 통해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구속 적용 사역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마련 하신 구속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전해져서 그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성령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는 그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으켜주시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속의 모든 혜택들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34-36문에서는 이렇게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가 금생에서 얻는 유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의롭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과 형벌 받으신 것을 인해 죄인인 우리에게 ‘죄 없다’고 선언해주신 것, 의롭다고 여겨 받아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양자로 삼으심입니다. 의롭다고 여겨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 권리,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받을 권리,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권리를 받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얻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유익은 거룩하게 하심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우리로 하여금 점점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십니다. 죄에 대하여는 점점 죽고 의에 대하여는 점점 살게 하십니다. 악하고 부패한 욕심들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실력이 점점 더 자라갑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정말 놀랍고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소요리문답 36문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여기에 따라 오거나 나오는 혜택들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36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 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무엇입니까?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혜택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과, 양심의 평안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진과,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 양심의 평안,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 은혜의 증진, 끝까지 견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거룩하게 된 신자가 이 땅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일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우리 주님의 삶과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리고 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며, 거룩한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우리는 종종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럽고, 혹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내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와 두려움 속에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시편에는 그런 우리와 동일한 경험을 노래한 시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영원히 버리시는 것일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는 것일까? 한결같은 그분의 사랑도 이제는 끊기는 것일까? 그분의 약속도 이제는 영원히 끝나 버린 것일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일을 잊으신 것일까? 그의 노여움이 그의 긍휼을 거두어들이신 것일까”(시 77:7-9, 표준새번역) 이런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한 번 약속했던 것을 번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덕스럽고 한결 같지 못한 사람의 사랑과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과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양심의 평안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두 번째 혜택은 양심의 평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의 평안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지식과 믿음으로부터 생기는 마음의 거룩한 고요함”을 말합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이러한 양심의 평안이 있을까요? 불신자들은 진정한 양심의 평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도 평화를 가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우상들이 무너지고 부서져 버릴 때 그들의 평화도 함께 깨지고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양심의 평화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양심의 평화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소요리문답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며 양자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인의 양심은 자신의 죄와 죄를 미워하시고 벌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늘 두려워 떱니다. 이 세상이 주는 육신적인 즐거움과 평안함이 두려워하는 양심을 잠시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 머물러 있습니다. 털어내려고 해도 결코 털어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서 죄 용서함을 받은 의인의 양심에는 참된 평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내가 받아야 할 모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죽음을 받으셨음을 믿고 확실할 때에 우리는 양심의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씼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품 안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우리 마음은 참된 안식과 쉼을 얻습니다. 또한 거룩하게 된 우리가 이제는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늘 진실을 말하며 정직하게 행하기에 우리 양심은 늘 평안을 얻습니다.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세 번째 혜택은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입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은 성도의 인격과 삶에서 드러나는 주도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를 바라볼 때에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의아해 합니다. ‘무엇이 저렇게 기쁜걸까? 공부를 잘해서 기쁜 것일까?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즐거운것일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 친구는 왜 저렇게 행복해보일까?’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 있는 이 기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기쁨은 “성령님이 우리 마음 속에 내주하시며 일하심으로부터 나오는” 기쁨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을 통해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인한 기쁨입니다.


우리가 이 기쁨을 얻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우리 죄인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죄사함을 받고 모든 복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될 때 얻게 된 것입니다. 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자녀의 복된 지위와 권세를 주신 때입니다. 또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가시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와 싸워서 그것을 죽이고, 세상의 여러 유혹들을 뿌리치고, 마귀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안에는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게 된 것도 기쁘지만,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이기게 하신 사실이 우리를 더욱 기쁘게 합니다.


은혜의 증진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네 번째 혜택은 “은혜의 증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자녀 삼으시며, 거룩하게 하신 우리를 은혜 안에서 점점 더 자라가게 하십니다. 성경은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성도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은혜 안에서 자라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의 지식과 믿음, 사랑과 소망이 자라는 것입니다. 회개와 그 열매가 더 풍성히 맺히고, 인내하고 절제하는 실력이 자라고, 다른 친구들을 향한 사랑과 섬김의 실력이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일출을 본 적이 있나요? 새벽에 바닷가에 서서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뜨기 시작한 때에는 세상이 어둡고 서늘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점점 높이 뜨면 어떤가요? 어둠은 사라지고 빛이 세상을 비출 뿐만 아니라 태양 빛이 전달하는 열기가 온 세상을 따스하게 감싸줍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점점 거룩한 모습으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존 브라운 목사님은 은혜 안에서의 자라남이 네 방향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위로, 아래로” 자라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내적으로는 어떻게 자라는 걸까요? 우리는 예수님과의 더욱 친밀한 연합과 사귐 속에서 그분을 더욱 사랑함으로 자라갑니다. 또 외적으로는 점점 더 선한 일들을 많이 행함으로 자라가며, 아래로는 우리가 더 겸손해지고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자라갑니다. 마지막으로 위로 자라가는 것은 우리의 정욕이 점점 약해지고 천상의 마음을 점점 많이 갖게 됨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더욱 친밀한 사귐 가운데 그분을 더욱 사랑하며 자랑가는 우리가 됩시다. 더욱 힘써서 선을 행하고, 더 겸손해지며,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마음을 점점 더 많이 갖게 되는 우리가 됩시다.



끝까지 견디는 것

“금생에서 의롭다 하심과 양자로 삼으심과 거룩하게 하심에 따라오거나 거기서 나오는” 마지막 혜택은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얻으며 거룩하게 되었다가 이 은혜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의지가 굳세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견디며 은혜 안에 있을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어떠함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와 영원한 중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음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얻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서 완전히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말씀의 설교와 기도, 세례와 성찬, 경건한 성도들과의 교제와 같은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은혜를 증진시키시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를 끊임 없이 용서하심으로써 우리가 계속해서 은혜 안에 거하도록 보존하십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0:27-28).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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