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항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 자신의 자녀들을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시험들과 그들의 마음의 부패성에 내버려두신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런 죄를 징계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그들 속에 숨겨져 있는 부패성의 힘과, 그들의 마음의 거짓됨을 발견케 하여 그들을 겸손하게 만드신다(대하 32:25,26,31; 삼하 24:1; 신 8:2).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자 일어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경성하여 미래의 범죄를 대항하게 하며, 기타 여러 가지 다른 의롭고 거룩한 목적을 이루게 하기 위함이다(고후 12:7-9; 시 73편, 77:1-12; 막 14:66-72; 요 21:15-1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후 12:7-9)
하나님은 그의 섭리 사역으로 죄와 고난까지도 그의 백성의 선(good, 이익, 구원)을 위해 실제로 사용하심을 5항에서 말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 각자의 신앙고백이 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항상 적용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큰 확신과 담대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5항의 신앙고백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몇 가지를 잘 기억하고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첫째, 여러 가지 시험들과 우리의 마음의 부패성에 내버려 두시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것이 “잠시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고 잠시 동안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여러 가지 시험들과 마음속에 있는 부패성의 힘에 끌려 범죄한 이전의(former) 죄를 징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성적 징계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들로 시험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훈련과 징계를 위한 것입니다. 셋째, 여러 가지 시험들과 그들 속에 있는 부패성의 힘과 마음의 거짓됨을 발견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케 만들기 위함입니다. 넷째, 그리하여 겸손히 그리고 간절히 하나님의 도움을 얻고자 일어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전에 지은 죄들을 통회하고 이제는 깨어 앞으로는 죄를 대항하여 성결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섯째, 여러 가지 의롭고 거룩한 목적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화와 겸손한 헌신을 가져오는 변화를 산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그 고난의 특성을 구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정죄)아래 있는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직접 내리시는 죄에 대한 형벌로서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런 의미로서의 정죄와 형벌은 없습니다(롬 8:1-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롭게 하려고 내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로서의 고난은 있습니다. 이 고난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즉 공의의 표현은 아닙니다. 이런 고난은 그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의 발로입니다. 그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죄를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를 따라 순종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히 12:6,7).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모든 고난이 징계에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으로서 인격과 삶에서 정당한 성실과 경건을 드러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고난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쓰셔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이 친히 정해 놓으신 방도로서의 고난도 있습니다(빌 1:12-14,29; 골 1:24).
욥에게 내려진 고난은 좀 특별한 것입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였지만, 욥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그 자신이 많은 유익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견디기 힘든 고난과 시련 가운데 놓인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확신하고 끝까지 견인할 것을 가르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을 때 너무 쉽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은 고난당하신 분의 신분과 가치가 독특하고(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독생자), 그 성격과 결과가 독특한 것입니다. 본질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분만이 받으실 수 있는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그 성격에 있어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고난과는 판이한 독특한 것이지만, 우리가 받는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받으신 그 고난의 어떠함을 희미하게나마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더욱 힘써 전하고자 하게 됩니다(벧전 4:1-2,12-16,19; 빌 1:29).
우리가 지고가야 할 십자가와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는 그 성격에 있어서는 구분되어야 하지만, 그 연관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생각하고 십자가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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