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항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행위 언약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은혜 언약(Covenant of Grace)이라고 불리는 둘째 언약을 맺기를 기뻐하셨다(갈 3:21; 롬 8:3, 3:20,21; 창 3:15; 사 42:6; 마 26:28; 히 10:5-10).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과 구원을 값없이 제시하시고, 구원을 얻도록 믿으라고 요구하시며(막 16:15,16; 요 3:16; 롬 10:6,9; 행 16:30,31), 영생을 얻도록 정하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성령)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기꺼이 믿고자 하며 믿을 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겔 36:26,27; 요 6:44,45, 3:5-8).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과 구속 언약이란 용어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언약의 개념들과 현상들은 성경에 분명하고도 널리 나타나 있습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 자체는 성경에 없지만, 한 분 하나님이 성부·성자·성령 삼위로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신학적 용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행위 언약과, 구속 언약과, 은혜 언약이란 용어도 성경에 편만한 언약 개념과 언약 사실들을 표현한 신학적 용어입니다.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라는 언약의 이중 구조 안에서 생각할 때 언약들을 수식하는 ‘행위’ 또는 ‘은혜’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그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행위 언약’이라고 말하고, 타락 후에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 말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첫 번째 언약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고, 두 번째 언약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은혜’라는 말로 수식하지 않고 ‘행위’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행위 언약 성립의 배경과 기초는 지존하신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언약을 맺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타락 전 첫 번째 언약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이며, 타락 후 두 번째 언약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 후 두 번째 언약을 첫 번째 언약과 구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은혜 언약’으로 부른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 작성자들이었던 청교도 신학자들은 ‘은혜’라는 말을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했습니다. 타락 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표현할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이라는 말은 사용하였지만, 은혜라는 말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첫 번째 언약인 행위 언약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전혀 없는 순전히 법적인 것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장 1항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순종의 보상으로 그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절대적인 분”(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1항)이시며, “홀로 완전히 충분하시고, 자기가 만드신 어떤 피조물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2장 2항). 그러므로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인간은 지극히 크시고 높으신 하나님과 동등한 계약 당사자로서 그분과 언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그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 창조해 주신 것과, 언약을 맺으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 번째 언약에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은혜가 받을 자격이나 권리가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첫 번째 언약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열매로서 신자들에게 입혀지는 구원의 은혜와 구별하여 사용하기를 원했던 청교도 신학자들의 용어 구별을 우리는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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