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항
그리스도는 그 중보 사역에 있어서 그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따라서 행하시되 각 본성은 그 본성 자체에 고유한 것으로 행하신다(히 9:14; 벧전 3:18; 요 10:17,18). 그러나 그 인격의 단일성 때문에, 한 본성에 본래 속해 있는 것이 성경에서 때로는 다른 본성을 칭하는 인격에 돌리기도 한다(행 20:28; 요 3:13; 요일 3:16).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 연합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서로 교류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속성 전달’(communicatio idiomatum)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상호 관련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전능하시면서 동시에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서 인성이 가진 일반적인 연약성(죄는 없으시지만)으로 인해 약하실 수가 있는가? 전지하시면서(신성으로) 어떻게 무엇을 배우셔야(인성으로) 했는가?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셨으면서 동시에 세상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장 7항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중보 사역에 있어서 그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을 따라서 행하시되 각 본성은 그 본성 자체에 고유한 것으로 행하십니다. 그러나 인격의 단일성 때문에, 한 본성에 본래 속해 있는 것이 성경에서 때로는 다른 본성을 칭하는 본성에 돌리기도 합니다.”(행 20:28; 요 3:13; 요일 3:16)
성경에는 예수님의 인성에 관한 언급이 있으며(눅 3:23 “삼십세쯤”; 마 4:2, 6:24; 막 15:21; 요 4:6 피곤하시고 약하심), 또한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말씀도 있습니다(요 1:1-2, 8:58 영원하신 분). 예수님은 피곤하여 배 안에서 주무실 때도 있었고, 동시에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실 수 있었습니다(마 8:24-27).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온전한 인성을 지니신 참되고 온전한 사람이신 신인(神人, God-man)이십니다. 이런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와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며 그의 유일하고 신비한 존재를 인정하는 신앙적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와 비교해서 설명할 수 없으며, 신인 양성 일위로 계시는 예수님이 경험하신 것을 아무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지식으로나 경험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비밀의 영광”(골 1:27)이며, 위대한 “경건의 비밀”(딤전 3:16),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딛 2:13)이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말도 그의 인성으로 죽으신 것입니다(눅 23:46; 고전 15:3). 그리스도의 신성으로는 죽으실 수 없으셨으며 오히려 자신을 죽음에서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요 2:19; 10:17-18; 히 7:16).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에도 그의 인성에 속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성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셨습니다(눅 23:43,46). 그러나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인성만 아니라 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고전 15:3; 엡 5:2). 예수님의 인성만으로는 수 많은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를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짐을 감당할 수 없고, 의(義)와 생명(영원한 생명)을 획득하여 우리에게 돌려주실 수 없습니다(롬 8:3-4; 빌 2:8; 히 2:9,14-15). 중보자는 참 인간이고 의로운 분이신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하고, 죽으시기까지 낮아져야 할 이유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6문, 17문, 그리고 40문에서 잘 요약하여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 중 한 본성이 한 것이 신성이 했든 인성이 했든 그리스도 자신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셨을 때, 그의 신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자기 비움(케노시스, 케노시스-헬라어)의 이론(빌 2:7에 근거)은 결국 성육신을 부정), 그의 완전한 신성을 그대로 가지시면서 동시에 성육신 전에는 소유하지 아니하셨던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완전한 사람, 곧 신인(神人, God-man, 신인 양성 일위)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완전한 신성으로 유지되면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한 인성으로 유지되면서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두 본성에 따라서 행하시기 때문에, 두 본성 중 어느 한 본성이 행한 것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한 본성에 있는 것이 다른 본성으로 완전히 전달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본성이 그리스도의 한 인격에 결합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속성들의 교통(혹은 전달)은 한 본성에 고유한 것이 다른 본성에 온전히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그렇게 되면 두 본성의 특성이 변화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한 인격(位格)에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인성도 그의 신성과 함께 경배의 대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어떤 인간에게 없는 죄를 지으실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성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성을 통해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실 수 있었으며, 우리를 위한 대속의 희생 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놀라운 신비이며 우주의 창조보다도 더 경이로운 것입니다.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성자 하나님(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인간이 되어(인성을 그의 신성과 함께 그의 위격(인격)에 결합시켜) 영원토록 신인 양성 일위이신 우리의 하나님과 구주로 계심은 하늘과 땅에서 가장 심오한 신비이며 가장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셨고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거기에 계시지만 동시에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인성(人性)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그의 신성(神性)과 위엄과 은혜와 성령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7문)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이 있는 곳마다 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서로 나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성은 아무 곳에도 갇히지 않고 어디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신성은 그가 취하신 인성을 초월함이 분명하며 그러나 동시에 인성 안에 거하고 인격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8문)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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