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문: 제10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10계명이 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온갖 불만과, 이웃의 잘됨을 시기하거나 원통히 여기는 것과, 이웃의 것에 대한 부당한 행동과 감정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17)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 13:5-6)
소요리문답 81문은 제10계명에서 금하는 것을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0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10계명이 금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온갖 불만과, 이웃의 잘됨을 시기하거나 원통히 여기는 것과, 이웃의 것에 대한 부당한 행동과 감정입니다.” 제10계명은 불만과 시기, 탐심을 금지합니다.
“불만”이란 우리가 처한 형편에 대해 마음으로 싫어하고 원망스러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처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때 그것은 항상 겉으로 드러납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늘 못마땅해 하고 투덜거리기 일쑤입니다. 또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작은 어려움에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쉽게 불평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냅니다. 반대로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을 만났을 때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감사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우리 처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 하만.
“시기”는 친구가 잘 되는 것을 억울해 하고 원망스러워하는 마음을 가르칩니다. 내가 갖지 못한 부와 명예, 은사, 성공을 다른 친구가 얻게 되었을 때에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분을 내고 원통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친구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관심하거나 차갑게 대합니다. 창세기 4장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들판에서 동생 아벨을 쳐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가인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찬 마음을 제어하지 못했고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탐심”은 세상에서 만들어진 좋은 것들을 지나치게 또는 부당하게 원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분에 넘치도록 원하는 것입니다. 또 옳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이웃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삶고 싶어하는 마음을 탐심이라고 말합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과 같은 모든 죄들이 탐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불만”과 “시기”, “탐심” 이 세 가지는 항상 짝을 이룹니다. 다른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고 다른 친구가 가진 것을 나는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자기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다른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가 가진 것을 갖고 싶어서 옳지 않은 방법임을 알면서도 결국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 처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 속에 살아가는 것일까요? 첫 번째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매우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고 이런 정도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좋은 대접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받는 것이니 감사함이 없고, 좋지 못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될 때에는 ‘왜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는 식으로 불평하며 분통을 터뜨립니다. 예) 하만.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에 5:13)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불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종류의 일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비록 우리의 불만과 불평이 사람을 향해 있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불만과 불평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 거룩하심과 공의, 선하심과 진실하심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불신앙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히 신뢰한다면 우리 처지에 불만을 품고 다른 친구를 시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만족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불만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잘 알 때 우리 안의 모든 불만과 시기와 탐심과 싸울 수 있고 죽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진 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날 때부터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채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태어날 때에 세상에서 살아갈 한 밑천을 양손에 꽉 쥐고 태어난 친구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욥은 고난을 만났을 때에 이 사실을 기억하였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우리는 벌거벗은 몸만 가지고 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살아왔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과 사람이 자신에게 큰 빚이라도 진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빚을 진 것은 우리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과 마음의 필요를 공급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우리가 오직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 안에서만 만족할 수 있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난 죄라는 벽을 허무시고 원수되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를 쏟으시고 우리를 위해 살 찢기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탐욕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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