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드러내 보이신 여러 가지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합니다. 솔로몬이 말한 것과 같이 이 세상에서 우리는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습니다(전 3:4-5). 이성과 의지와 함께 감정(정서)은 사람됨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마찬가지로 참 사람이신 주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비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자비로우셔야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육체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영적인 어려움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불쌍히 여기심으로 반응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자비를 베풀 기회를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응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비롭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진노
불의 앞에서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경건하다는 표시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연약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늘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일은 지상에 계신 예수님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막 3: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막 10:13) 예수님은 병자의 절박한 요구에 몰인정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긍휼도 없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실망하여 분노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의분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기쁨
바울은 ‘기쁨’을 성령의 열매로 묘사합니다. 성령의 사람으로서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에 필연적으로 기쁨을 경험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가 그러하듯 예수님도 특별히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 어떤 특정한 상황과 사실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눅 10:21) 주님께서 사탄을 정복하심으로 임한 구원을 성부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 계시해주셨을 때, 예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기쁨을 안길 일은 우리에게도 기쁨을 주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눈물
예수님은 자기 감정을 감추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적절하게 반응하셨습니다. 실례로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깊은 슬픔으로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습니다(요 11:33). 예수님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계셨고 나사로의 죽음에 당황하지 않으셨지만, 진심에서 우러나는 비통으로 타인과 슬픔을 함께 하셨습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이라는 비참이 사랑하는 나사로를 집어 삼킨 사실을 인해 우신 것은 적절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흘리는 눈물을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심은 그분 자신의 경험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정과는 달리 예수님의 감정은 완벽하게 표현되었고, 또한 그 표현에는 영광스러운 조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감정은 언제나 ‘완벽한 조화와 균형’ 가운데 드러났습니다. “예수에게 이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환희였고, 단순히 짜증 섞인 불쾌감이 아니라 맹렬한 분개였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연민이 아니라 긍휼과 사랑으로 마음이 깊이 움직이는 것이었으며, 피상적 괴로움이 아니라 죽을 만큼 넘치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절대 이런 감정들에 압도당하지 않았다.”(B.B. 워필드)
* 본 글은 마크 존스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제8장 그리스도의 믿음(p.115-124)에서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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