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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제9장 자유의지(4)

4항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심시켜 은혜의 상태로 옮기실 때, 하나님은 그를(회심한 죄인) 그가 본래 가지고 있던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골 1:13; 요 8:34,36),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으로 선한 것을 자유롭게 원하고 행할 수 있게 하신다(빌 2;13; 롬 6:18,22). 그러나 그에게 남아 있는 부패성 때문에 그는 온전히 또한 오로지 선한 것만을 원하지 못하고 악한 것도 원한다(갈 5:17; 롬 7:15,18,19,21,23).

5항

사람의 의지는 오직 영화의 상태에서만 완전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자유롭게 선만 행하게 된다(엡 4:13; 히 12:23; 요일 3:2; 유 24; 계 22:3,4; 대하 6:36; 요일 1:8-10, 2:1-6; 시 17:15).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타락한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은 심히 부패하여 구원과 영적인 선을 원하거나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죄악에 이끌리는 성향만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죄와 사망의 종된 비참한 상태에 있는 그의 택하신 자들을 중생의 상태, 즉 은혜의 상태로 옮겨주셨습니다(롬 8:1-2; 엡 2:1; 골 1:13,14). 이제 중생한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으로 선한 것을 자유롭게 원하고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자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부패성 때문에 온전히 그리고 오로지 선한 것만을 원하고 행하지 못합니다. 부패한 욕심과 습관을 따라 악한 것도 원합니다. 이로써 중생된 자 안에 긴장과 갈등이 있으며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갈 5:17; 롬 7:15,18,19,21,23).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성향과 새로운 소원과 새로운 행함을 주셔서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주셨습니다(빌 2:13; 롬 6:18,22). 새 피조물로서 우리는 새로운 성향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새 성향과 능력으로 우리는 영적인 선을 원하고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타락이 전인(全人)의 타락인 것같이 중생 역시 전인(全人)이 새롭게 된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죄로 오염되고 부패하게 된 것같이 중생으로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새롭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었을 때에, 그의 의지도 죄에 속박된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생으로 그의 모든 것이(全人)이 새롭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성향과 새로운 의지 작용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그의 의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새 마음, 새 영, 새 성향, 새 생명을 따라서 작용할 수 있는 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으로 씻음 받은 중생자의 의지가 항상 하나님과 그분의 기쁘신 뜻만을 원하고 행하지 못한다는 데 중생자의 고뇌가 있는 것입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아직은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남아 있는 부패성 때문에 갈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갈등 상태를 갈라디아서 5장과 로마서 7장이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팎으로 전투해야 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구원받은(거듭난) 죄인들인 우리는 자유롭게 선을 원하고 행할 수 있지만, 또한 자유롭게 악한 것도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갈등 때문에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는 오직 선(good)만을 원하고 행할 수 있는 복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된 상태를 5항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오직 영화의 상태에서만 완전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자유롭게 선만 행하게 됩니다.” 영화 상태란 성도의 몸이 부활하여 그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셔서 우리의 몸을 다시 살려 영광의 부활체로 변화시켜 주실 때에, 우리는 영화 상태에서 영원토록 변함없이 선만 행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 중생자들도 아직은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되지 못하여 속으로 탄식하면서 우리 몸의 구속의 완성을 기다립니다(롬 8:23).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지는 영화 상태에서 우리의 의지는 변함없이 선만 원하고 행하게 될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한 전인적 부패 상태에서 몸의 부활로 전인적 영화 상태로 변화된 것입니다. 전인적 변화가 중생에서 시작되지만, 그 변화는 영화에서 완성됩니다. 이 영화 상태는 첫 사람(아담)이 실패하고 상실한 것(그에게 약속된 궁극적 영광의 상태, 생명 나무가 상징하고 약속한 것)을 둘째(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성취해 주신 것입니다. 이 영화 상태는 우리에게 약속된 복스러운 소망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 3:20-21). 이 영광스런 변화에는 우리의 의지를 완전하게 변화시켜 영원히 선만 원하고 행하도록 변화시키는 것도 포함됩니다(요일 3:2; 유 1:24).


* 본 글은 송용조 목사님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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