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칼뱅과 흑사병
칼뱅이 처음 전염병과 대면한 것은 6살 때 어머니가 전염병(아마도 흑사병)으로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14세가 되던 해인 1523년, 그의 고향에 다시 흑사병이 퍼지게 되자 칼뱅의 아버지는 안전을 생각해 칼뱅을 파리에 있는 학교로 보냅니다. 1538년에 칼뱅은 제네바에서 쫓겨나 스트라스부르로 가게 되는데요, 거기에서 흑사병으로 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1541년 4월 칼뱅은 황제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레겐스부르크에 있었는데, 그 때 스트라스부르에 흑사병이 무섭게 퍼지며 많은 지인들이 죽게 되고, 가족들의 전염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칼뱅은 슬픔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이 분명하기에 선한 목적으로 이런 일들을 의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칼뱅은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위로했습니다.
1541년 9월 칼뱅은 제네바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해 10월, 제네바에도 흑사병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1542년판 칼빈의 예전에는 목사들의 병자 방문을 돕기 위한 지침이 제공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병자를 방문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할 때, 목사는 그들이 당하고 견디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과 그분의 선한 섭리로부터 온다는 것과 또한 하나님이 보내시는 모든 것은 그의 신자들의 유익과 구원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16세기 제네바의 병원은 성벽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들판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흑사병이 창궐하였을 때 제네바 목사회는 병을 앓고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영적 위로를 제공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할 목사들을 지명하였습니다.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수행하는 목사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전염병에 걸릴까봐 두려운 나머지 겁쟁이가 되는 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1542년 가을에 흑사병이 제네바를 덮치자, 피에르 블랑쉐라는 목사가 “가련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자신이 흑사병 병원을 방문할 수 있게 배치해 달라고 자원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1542년 10월에 칼뱅이 로잔의 종교개혁자인 비레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습니다.
“흑사병이 여기서도 격렬한 기세로 시작되었고 감염된 사람들 가운데 단지 몇몇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동료 가운데 한 사람이 병자들을 돌보도록 임명되었습니다. 피에르 블랑쉐가 스스로 추천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즉시 잠자코 받아들였습니다.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그 위험을 감수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 각자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무언가 필요할 때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칼뱅은 블랑쉐가 죽게 되면 자신이 그 일을 맡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을 표현했지만, “목회자가 목회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한, 감염의 두려움 때문에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그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음을 밝혔습니다.
이듬해 봄에 흑사병이 다시 제네바를 찾아왔고, 1543년 5월 11일, 용감한 피에르 블랑쉐는 병자들에게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다시 임명되었지만, 이내 흑사병에 감염되어 5월 말에 죽고 맙니다. 블랑쉐의 죽음으로 칼뱅과 동료들은 거의 일주일 동안 블랑쉐의 사역을 대신할 목사를 찾았지만 누구도 선뜻 이 임무를 수행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하기로 하였고, 행정당국은 칼뱅의 위상과 중요성 때문에 칼뱅은 후보자 명단 자체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문제는 제비뽑기로 선정된 목사들이 이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자 마티외 드 제네스통이라는 젊은 목사가 자원하여 이 난국을 깨뜨렸고, 얼마 후 제네스통 역시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흑사병의 시기는 제네바의 목사들에게 많은 도전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칼뱅은 전염병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훈련이라는 이중적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심판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주시는 진노의 심판이 있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교정적 징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신자에게 고통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연단의 과정이고, 죄인들은 일평생 이 연단의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이렇게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면서 칼뱅은 동시에 전염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말합니다. 역병으로 인한 슬픔과 죽음은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함으로 극복된다고 말하며 동시에 병든 자들을 전문적으로 돌보기 위해 교회과 시의회가 협력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흑사병을 두려워하지 않고 병자들을 찾고, 날마다 심방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사랑했습니다. 전염병에 대한 칼뱅의 이해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섭리, 사회적 책임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5) 베자와 흑사병
1564년, 칼뱅이 죽자 베자가 그 뒤를 이어 제네바 교회를 섬기게 됩니다. 베자의 사역 초기인 1568-1571년에, 제네바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약 3천 명의 시민이 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1571년은 베자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해가 되었는데요, 흑사병을 피해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온 형제 니콜라스가 죽고, 제네바 아카데미도 운영이 어려워 결국 베자를 제외한 모든 교수가 면직되었기 때문입니다.
베자는 흑사병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1579년 “흑사병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라는 책을 냅니다. 이 책에서 베자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는데요. 먼저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흑사병이 무엇인지 다루고, 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였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베자는 다른 동시대인들처럼 흑사병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논쟁하기보다는 이 질병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사람들이 죄를 깨달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① 당시 목회자들 중에 흑사병은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그 벌을 피해 도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불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베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작정이 변하지 않고 그의 영원한 섭리가 우리 삶에 변하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 일상의 적법한 수단을 제거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의 명백한 예(행 27장)에서 보는 것처럼 삶의 연장에 대한 답을 하나님께로부터 구한다고 할지라도 아니다. 우리의 삶을 연장시키고 끝내는 것과 관련하여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작정한 것이 아직 우리에게 숨겨져 있을 때,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보기 드물다.”
베자는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병을 치료하거나 병을 피해 도망하는 것 같이, 이 병에 대한 적절한 도구(수단)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작정하신 목적을 이루는 방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는 단순히 ‘흑사병은 죄에 대한 형벌이니까, 형벌을 피해 도망하는 것은 불신앙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흑사병을 통해 의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베자는 흑사병을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병으로 진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자각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를 바라보도록 이끌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치료책을 허락하셔서 우리로 그 병에 대처하게 하십니다. 베자는 우리가 흑사병을 피해 도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 도망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한 의도에서 벗어나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② 베자는 흑사병이 발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의 자리를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가 있다는 뜻이라면서,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가 어디인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주어진 의무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흑사병과 관련하여 베자가 이런 권면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흑사병이 창궐하자 혼자 살기위해 고통당하는 성도를 두고 도망하는 목회자도 있었고, 흑사병에 감염된 환자를 버리고 방치하는 가족과 이웃들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568-1572년의 흑사병 시기에 제네바 목사회는 흑사병의 희생자들이 공포에 질린 가족이나 이웃의 공격을 받거나 버림을 당한 12건의 사건을 중재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충격적인 한 가지 사건은, 1571년 9월, 중산 계급에 속한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딸이 임신 말기에 흑사병에 감염되었습니다. 그러자 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어머니와 형제와 자매가 이 젊은 여인을 버렸습니다. 심지어 분만의 고통이 이 감염된 여인을 엄습했을 때, 가족이나 이웃의 그 누구도 이 절망에 휩싸인 여성의 도움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가련한 여성은 물과 도움을 달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혼자 아이를 분만해야 했고, 산모와 아이는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죽고 맙니다. 집 밖에서 이 모든 호된 시련의 과정을 생생하게 들었던 이 여인의 가족은 이미 그녀를 위한 무덤을 파고 있었습니다. 목사회는 이런 끔찍한 일에 대해 가족을 엄하게 징계하고 시행정부에 다시는 이런 일이 있지 않도록 대처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렇게 흑사병으로 인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목회자의 소명도 버리고, 가족과 이웃도 내팽개치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자리에 허락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한 베자의 신학적 이해는 흑사병이 발발할 때,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을 생각하도록 하는 권면으로 적용됩니다. 흑사병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발발했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있는 자들을 다시 일으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손 쓸 여력도 없이 병이 퍼지는 상황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인식하여, 세상의 덧없음을 넘어서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종말에 있을 심판대에서 완성되는 영생을 확신해야 합니다. 베자는 위의 상황과 같이 흑사병이 발발했을 때 경험되는 실제적인 문제들도 이 책에서 다룹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관계된 윤리적 판단과 행위의 문제이지요.
베자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적 판단에 따른 윤리적 행위 이전에 하나님의 계명의 절대성을 전제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마을을 떠나는 것은 명백한 죄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행위이며 자신의 임무와 소명의 자리를 떠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자에게 이웃 사랑은 윤리적 행위를 판단하기 위한 절대적 척도입니다. 이 전제에서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 때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악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임무와 공동체의 임무가 겹칠 때, 베자는 윤리적 행위의 선택에서 공동체가 부여한 임무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그의 나라와 이웃과 동료들에게 진 빚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배려해서는 안 된다. … 사랑은 자신에게 속한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적 감정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과 임무를 우선시하는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판단의 기준에 따라서 공동체를 떠날 것인지, 머무를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윤리적 판단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사병이 퍼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외적 행위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드러난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의도로 그 행동을 하였는가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의도와 그 결과로서 행위는 일치하기보다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의 주체로서 각자는 성경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기도하는 순종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 우리가 있을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선한 행위가 흘러나오게 됩니다.
* 한 줄 요약
루터 : 흑사병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참된 믿음과 이웃사랑의 시험무대”이다.
츠빙글리 : 토기와 같이 연약한 존재인 인간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불링거 :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의 위로와 신앙으로 인내하여 더 많은 성도들을 위로한 목회자.
칼뱅 : 감염의 두려움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다.
베자 :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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