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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앙(1)

최종 수정일: 2021년 10월 31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이 몇 일이지요? 10월 31일입니다. 10월 31일은 교회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4년 전 1517년 10월 31일, 중세 로마 교회의 사제(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자신이 머물고 있던 비텐베르크 성 외곽에 있는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던 날입니다. 마르틴 루터 자신은 로마 교회를 개혁해야겠다는 어떤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벌인 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통해 당시 타락해 있었던 교회를 개혁하시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독 교회를 이해하려면 초대 교회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개신 교회를 이해하려면 종교 개혁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기독 교회라 함은 보통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즉 천주교회와 동방정교회, 개신교회를 모두 아우르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개신 교회는 16세기 루터의 이 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된 교회를 말합니다. 독일의 루터교회나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잉글랜드의 성공회가 이 개신교회에 포함됩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의 삶과 인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출생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특별히 우리 양의문교회가 소속되어 있어있는 장로교회, 좀 더 넓게는 개신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써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던 마르틴 루터의 삶과 신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중세 교회의 부패

먼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할 당시 교회의 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개신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꼭 그렇게 분리되었어야만 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나 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교회의 형편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당시 교회의 형편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바른 교리와 예배, 삶으로부터의 이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교회는 형식적으로는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전통’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전통이란 교회의 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들이나 교황이 공식적으로 선언한 문서 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는 결국 ‘전통’을 성경보다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성경과 성경의 가르침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성경과는 관계 없는 인위적인 관습들이 교회의 예배 의식과 질서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목록은 교리의 변질 역사를 잘 보여줍니다.

330년, 죽은 자를 위한 기도의 시작; 375년, 성인숭배와 교회에서 마리아상과 같은 상(像)을 사용하기 시작; 500년, 평상복과 다른 사제복이 대두: 593년, 연옥교리 제정; 786년, 유물들에 대한 경배를 인가; 927년, 추기경단의 설립; 995년, 사망한 이들에게 성자 칭호를 수여하는 성인들의 시성(諡聖)이 시작; 998년, 금요일과 사순절 기간의 금식제도; 1079년, 미사가 점차 제사로 발전, 사제의 독신제를 다시 강요; 1123년, 교황 칼리스투스 2세가 주관한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독신제를 교회법으로 선포; 1184년, 종교재판소 설치(후일 개신교 탄압); 1190년, 면죄부 판매 시작, 1215년, 화체설(化體說, 성찬식 때 성찬의 떡과 잔이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 선포; 1215년, 신부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告解) 제정; 1229년, 평신도들의 성경 소유 금지; 1439년, 연옥의 공식교리 선포; 1439년, 7성례 교리 확정.


이처럼 성경의 바른 가르침으로부터 이탈한 로마 교회의 타락은 구원에 관한 가르침에 있어서 두드러졌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자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성령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과 의롭다함을 얻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중세 교회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우리 사람 편의 행위를 통한 공로와 공덕이 필요함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공로를 쌓아야 구원을 받을 만큼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만큼 충분한 공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교회가 정한 규범을 따라 여러 성례(7성례)에 참여하고, 미사를 드리며 선을 행하고, 금식과 같은 금욕적인 생활을 하여도 구원에 이를 만큼의 분량에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신앙의 선조들 가운데에는 선을 아주 많이 행하여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도 남을 만큼 공덕을 쌓은 자들이 있어서 그들이 쌓은 그 공덕을 나눠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와 같은 성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많은 공로를 쌓았고, 이들이 이렇게 쌓은 여분의 공로를 가리켜 잉여공로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잉여공로를 보관하는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교황이 가지고 있어서 잉여공로를 교황이 자기 뜻대로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비판했던 면죄부(혹은 면벌부)의 등장도 구원에 관한 잘못된 교리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중세 교회에는 죄를 지은 사람이 사제에게 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죄 지은 자가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그것을 사제에게 아뢰면 사제는 그가 지은 죄에 대한 벌(보속)을 부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 유럽에서는 교황의 대리인들이 면벌부를 판매하였습니다. 잉여공로의 보고의 열쇠를 가진 교황의 인장이 찍힌 면벌부를 돈을 주고 구입하면 죄에 대한 벌을 면제 받게 된 것입니다. 즉, 회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의 출생과 성장

이런 상황 속에서 종교 개혁의 불을 지핀 것은 마르틴 루터(1483-1546)입니다.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에 독일의 아이슬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마르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루터가 세례를 받은 11월 11일이 로마 교회의 성인인 “마르틴”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루터는 전형적인 로마 교회의 배경에서 태어났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루터의 아버지 한스 루더는 매우 엄한 사람이었고, 자식들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원래 농사를 짓던 집안이었지만 구리 광산을 경영을 통해 큰 부와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의 자식들도 그러한 성공을 이루기를 원했습니다. 특별히 첫째 아들인 마르틴 루터를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에 보내어 법률 공부를 하기를 바랐고, 루터 역시 아버지의 뜻을 따라 1501년 5월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인 1505년 2월에 문학석사 학위를 받아, 그 대학의 전문 대학원에서 공부할 자격을 얻습니다. [루터의 아버지는 매우 자랑스러워하였고 졸업 선물로 비싼 법전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즈음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루터의 인생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던 특별한 사건을 경험합니다.


1505년 7월 2일 21살의 루터가 부모를 찾아왔다가 학교로 돌아가던 길에 에르푸르트 근방의 스토턴하임(Stotternheim)이라는 곳에서 큰 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번개가 루터의 바로 옆을 때렸고 루터는 땅에 완전히 꼬꾸라졌습니다. 당시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루터는 자신의 죽음과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 대해 생각하였고, 그러면서 그는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내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루터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서 벼락과 서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루터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자신의 뜻대로 법률가가 되어서 부와 명성을 쥘 수 있는 길로 가지 않고, 수도사가 되겠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루터는 법률가가 되어 부모님을 잘 모시기보다 기도로 가족들을 더 잘 보호해줄 것이라는 편지를 쓰고, 그 일이 있은 지 2주 후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수도사가 된 루터는 사진과 같이 머리카락을 머리 둘레에만 조금 남기고 다 깎고 수도사 복을 입었습니다. 수도원에서의 삶은 많은 엄격한 규율들이 따르는 삶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드리는 기도로 시작하여 아침 6시에 한 번, 9시에 한 번 12시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일곱 번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친 속옷을 입었고 추운 겨울에도 언 몸으로 지내며 밤을 새기도 했고, 며칠에 걸쳐 금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자기 몸에 스스로 회초리질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후에 루터는 수도사로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뼈와 가죽만 남은 귀신 같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당시 루터는 매우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였습니다. 루터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생활을 해야 했을까요? 당시 루터의 가장 큰 고민은 자기 영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을 구원하며 사죄의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일을 위해서 루터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 안에서 끊임 없이 일어나는 죄와 욕심을 죽이고자 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정말 루터는 이런 방식으로 그가 바라던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루터는 수도원 생활과 의식들에 최선을 다했지만,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루터의 마음 속에서 죄책감과 그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은 더해져만 갔습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나의 기도는 온전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였는가?’를 고민하였습니다. 또 자신의 죄가 생각나서 자신을 지도하는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난 후에도 ‘나의 회개는 참된 회개였는가? 혹시 하나님께 벌 받는 것만 피하기 위해서 한 회개는 아니였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께 잃어버린 자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터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샅샅이 살펴 사소해 보이는 죄까지 찾아 고백했던지 루터의 고해성사를 듣던 사제는 루터에게 “가서 죄 같은 죄 좀 지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후에 루터는 이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규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다. 나는 통회하곤 했다. 내 죄들을 고백하고 열거했다. 나는 종종 죄의 고백을 반복했고 요구되는 참회를 열심히 수행했다. 그럼에도 나의 양심은 내게 결코 확신을 주지 않았다. 나는 항상 의심하면서 말했다. ‘넌 그것을 제대로 수행 못했어! 넌 충분히 통회하지 못했어! 넌 고백에서 그것을 빼먹었어!’”

이런 가운데 루터는 수도원의 원장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던 스타우피츠(J. Staupitz)의 추천으로 1508년부터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됩니다. 1512년 10월에는 같은 대학에서 “거룩한 성서의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어 정식으로 신학 교수가 되어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시편(1513-15)과 로마서(15-16), 갈라디아서(16-17)와 히브리서(17-18), 리고 다시 시편(18-21)을 강의하면서 루터는 자연스럽게 성경을 깊이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던 구원의 문제, 곧 죄인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때의 체험을 ‘탑체험’이라고 부르는데, 수도원 탑에 있던 그의 골방에 들어가 연구하던 중에 경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죽기 약 일년 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로마서 1장 17절의 그 말씀, ‘하나님의 의’를 싫어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루터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율법이 범죄한 죄인의 심판을 선언하는 것처럼 복음도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고 있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원죄로 인해 영원히 잃어버리신 비참한 죄인들이 십계명 율법에 따른 온갖 재앙으로 말미암아 산산조각이 나는데도, 이런 죄인들이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 채 복음으로 인해, 정녕 그의 의와 진노로 우리를 위협하는 복음으로 인해 고통이 더해 가는데도 충분하지 않으신 것 같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이 말씀의 의미를 놓고 씨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밤낮 묵상을 거듭하다, 이 말씀 곧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의 문맥에 주목하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의가 의인이 하나님의 선물,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는 의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런 의미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으로, 곧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수동적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여기서 나는 완전히 다시 태어나 열린 문을 통해 낙원으로 들어갔다고 느꼈다.”


우리는 수도사로써 루터의 이러한 고민과 영적 씨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타락하여 마귀의 회처럼 되어버린 자신의 교회를 개혁하시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종 루터를 부르시고 그를 개혁시키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몇 주전 소요리문답 31문을 통해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해 공부한 바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을 통해 효과적으로 불러 그리스도를 믿게 하실 때에 먼저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루터 한 사람을 준비하시고 구원하시면서 루터로 하여금 자신의 죄와 부패를 더욱 깊이 직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고민과 씨름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기보다 하나님께서 한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부르심 앞에서 당시 많은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루터는 자신의 죄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았습니다. 루터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율법의 판단 앞에 자신을 벌거벗겨 세웠고, 자신의 죄와 부패한 마음을 정직하게 살피고 인정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 앞에 여러분 자신을 정직하게 세워놓고 있습니까?


둘째, 성경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루터의 고뇌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파해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 자신의 죄와 비참을 깊이 깨닫는다고 해도 복음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 안에 있는 풍성한 구속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루터와 같은 고통 가운데 거하든지, 아니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어 세상을 살아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되는 교회와 복음 설교자를 세워주셨고, 뿐만 아니라 원하기만 하면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복음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영적인 깊은 고통 가운데 있는 루터를 건지고 자유하게 한 것은 성경 연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성경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 교회 가르침이 잘못된 것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베푸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통해 복음의 비추임을 받은 루터의 마음에는 참된 평화와 자유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은혜가 임했고, 계속해서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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