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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종교개혁자, 존 칼빈의 삶과 신앙(4)

제2차 제네바 개혁기

칼빈이 스트라스부르에서 지내는 동안 제네바의 상황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개혁자들을 추방했던 세력들은 시의회에서 힘을 잃고 파렐을 지지했던 ‘길레르맹’파의 사람들이 도시의 주요한 직책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네바시는 여러 차례에 걸쳐 칼빈을 다시 제네바로 데려오려는 시도를 하지만 칼빈에게는 제네바로 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파렐에게 보낸 편지에서 “십자가보다 더한 죽음을 일백 번 당한다 하더라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 속에서 칼빈은 제네바로 가는 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고 곧 제네바행을 결단합니다. 1541년 8월 제네바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면서 파렐에게 쓴 편지에서 당시 칼빈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나에게 선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당신의 충고를 따르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내가 동의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에게 바쳐진 희생 제물처럼 나는 나의 심장을 하나님께 드리나이다...저 자신을 위한 모든 고려 사항들은 제쳐두고, 그들이 바라는 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는 것 외에 다른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나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나의 뜻과 나의 애틋한 감정들을 바치오며, 복종시킬 것이며, 흔들리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뜻을 버려야만 할 때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말씀하실 것을 소망하면서 나 자신을 복종시키고자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제네바에서의 사역은 1564년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중단되었던 개혁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제네바에 돌아와서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에는 자신이 추방 당하기 이전에 설교했던 그 다음 본문부터 설교를 이어나갔습니다. 또한 칼빈과 동료 목사들 그리고 시의회에서 선출한 사람들을 포함한 특별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제네바 교회 법령」(Ecclesiastical Oreinances)를 작성하였습니다. 「제네바 교회 법령」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선 우리 주님이 자신의 교회 통치를 위에 제정하신 직분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곧 목사, 교사, 다음으로 장로, 마지막으로 집사다. 우리가 잘 정돈된 교회를 갖고, 교회를 온전히 유지하기 원한다면 마땅히 이 제도 형식을 준수해야 한다.

여기서 칼빈은 신약성경의 원리를 따라 네 개의 직분, 목사, 교사, 장로, 집사를 두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고 성례를 시행하며, 교사는 자격 있는 목사를 양성하고 신앙교육을 하며, 장로는 성도들의 생활을 감독하고 잘못된 행동을 사랑으로 권징하고, 집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특별히 당시 제네바에 있는 병원(구빈원)을 운영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 법령에서 칼빈은 당회(Consistory)를 조직하도록 하였습니다. 제네바의 목사 여섯 명과 열두 명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는 매주 목요일 아침에 소집되었고 제네바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감독하며 때에 따라서는 권징(수찬정지나 파문)을 시행하였습니다.

또 「제네바 교회 법령」에서 어린아이들의 신앙교육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를 위해 「제네바 교리문답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제네바에서는 주일 아침 9시에 예배가 있었고 예배를 마친 후 12시에는 요리 문답 공부가 있었습니다. 칼빈이 만든 「제네바 교리문답서」를 통해 충분한 교육을 받은 후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 이 요리문답을 엄숙하게 낭송하게 하고 교회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이들은 성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칼빈의 대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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