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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Lee Juman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1)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오늘부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 The Lord’s Prayer)를 살펴보며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 공부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필요한 것, 소망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우리가 정말 소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것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두 가지 방편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첫 번째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우리가 마땅히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든지, 마땅히 기도해야 할대로 기도한다면, 우리가 하는 그 모든 기도에는 주기도에 포함되지 않은 말이 단 한 마디도 들어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팔백여 년 후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주기도로 기도하는 사람은 마땅히 바라야 할 것을 구할 뿐만 아니라 바라야 할 순서대로 구한다. 이렇게 주기도는 간구의 준칙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취지로 간구해야 하는지를 안내해 주는 길잡이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주기도는 “최고의 기도”라고 말하였고, 칼뱅은 “가장 확실한 기도의 방법과 형식”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성자인 우르시누스는 주기도를 “가장 좋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즉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도록 이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8문). 따라서 주기도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줄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즉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과 소망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열심히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만큼 살 수 있고, 사는 것만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공부할 때, 한편으로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기도가 되어지길 소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기도가 우리의 삶에 반영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되길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마 6: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지금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가 이전에 하신 말씀과 연결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 ‘이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에서 ‘저렇게’ 기도하면 안 된다는 말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주님께서 저렇게 기도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기도는 두 가지입니다. 바로 외식하는 기도(마 6:5-6)와 중언부언하는 기도(6:7-8)입니다.


먼저 중언부언하는 기도부터 생각해 봅시다.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무언가 말로 표현하긴 하지만 의미는 없이 반복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주문을 외우고 염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결정해 놓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것을 반드시 쟁취할 수 있다는 마인드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말로,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열심히 기도하면 더 큰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처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정성을 다하고 열심히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바와 그 목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는 일방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마치 자판기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을 우리가 흥정해야 할 거래의 상대로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8절에서 저희를 본받지 말라 말씀하시면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모두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외식하는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외식하는 기도는 겉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면하여 인격적인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고, 그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셔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나쁜 기도이고,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하는 기도가 좋은 기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과 마주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렇게 외식하는 기도,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고, 이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거래 상대인 것처럼 기도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척하지만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기도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가장 좋은 것들을 베풀고 계시는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된 대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만을 온전히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배운 내용을 함께 나누고 기도합시다.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의 기도는 어떤 기도에 가까운지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가 되게 해주시길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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