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7)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14-15)
다섯 번째 간구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서로에게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섯 번째 간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와 우리의 용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시간에는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고, 우리의 기도에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다섯 번째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간구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아가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구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적인 필요에는 민감하지만, 영적인 필요에는 둔감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잘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어야 하는 존재일뿐만 아니라 날마다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때문입니다(사 59:1-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구원이 취소될 수 있고,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의 기도임을 기억하십시오. 선하신 아버지께서는 자녀가 죄를 짓고 잘못했다고 해서 쫓아내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죄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도 않습니다. 말씀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책망도 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시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의 죄 때문에 아버지와의 관계가 엉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중요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겁에 질린 죄인이 재판관에게 하는 호소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녀가 아버지께 외치는 간구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버지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변함 없는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맞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양식이 필요한 것처럼, 날마다 회개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용서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간구의 내용을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14-15절에서도, 또 우리가 잘 아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관한 비유’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마치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것처럼 말씀하실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기도가 자녀가 아버지께 드리는 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에 관한 비유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도 우리의 이웃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서도 동일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종을 해방시켜 주는 안식년이 되면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후히 주어 보내라 하실 때(신 15:12-15), 가난한 사람, 노동자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배려하고 돌보라 말씀하실 때(신 24:11-22)에, 그 이유를 너는 부자이고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것과 하나님께서 너를 거기서 구원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행하라고 명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어떤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선하신 아버지께서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칼뱅은 이 간구를 “아버지, 제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제 죄를 용서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지옥에 보내주세요”라는 의미가 아니지요, “제가 주님을 더욱 닮게 해주세요, 주님께서 제게 하셨던 것처럼 저도 이웃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와 “우리의” 회개를 위한 기도
이 간구가 놀라운 것은, 용서를 나와 너의 관계로 다루지 않고, 처음부터 ‘우리’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할 죄인일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고 또 용서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 또한 우리에게 베푼 누군가의 용서와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그래서 내게 죄를 지은 사람을 볼 때 나도 그와 같은 죄인이고, 그런 나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과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기억하며 정죄와 비난이 아닌 용서와 배려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죄와 잘못도 그냥 봐주고 넘어가자는 말이 아닙니다. 용서는 죄에 대한 판단을 전제합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 없다는 듯이 정죄하고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의 죄와 연약함을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고 그 안에서 회개하여 옳은 길로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힘쓰는 것이 용서입니다. 이렇게 용서는 복수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용서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 간구에서 주님은 나의 죄만 회개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 다니엘 그리고 느헤미야와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출 32:31-32, 단 9:4-5, 느 1:4-7). 우리는 교회 안에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와 상관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여 무관심하거나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주님께서 구원하시고 부르셔서 우리와 한 몸 되게 하신 지체요, 함께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죄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 주님의 백성 안에 있는 모든 죄도 우리의 죄로 여기고 함께 그 죄로 인해 슬퍼하며 회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간구는 ‘주님의 백성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의인이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의 자리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와 형벌을 받으셨고,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실 때에도 죄가 없으신 주님과 죄가 많은 우리를 가르시지 않고, 우리를 내 형제요, 내 백성이라 부르시길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셨습니다. 겸손하고 아름다우신 우리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또한 우리도 용서할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합시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간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간구대로 기도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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