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왕하 2:23-25)
본문은 승천한 엘리야의 뒤를 이었던 엘리사 선지자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두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바알 숭배로 악명 높았던 왕 아합 왕조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만연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아합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왕들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여호와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상을 만들고나서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왕상 12:28) 역대 왕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형상을 만들어 섬겼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시돈의 왕이요 바알 제사장인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독한 바알 숭배를 만연시켰습니다. 물론 엘리야 선지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고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기대어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기도 하셨습니다. 갈멜산에서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불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제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남게 된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계승자가 되었으며 엘리사는 엘리야가 가졌던 능력과 은사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칠 때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왕하 2:6,14), 강 맞은 편에 있었던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임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가 엘리야를 계승한 선지자를 입증하는 일이었습니다(왕하 2:15).
오늘 본문인 열왕기하 2장 23-25절에 기록된 사건 역시 엘리사가 엘리야를 계승한 선지자임을 입증하는 사건입니다.
엘리사가 벧엘을 지날 때였습니다. 한 무리의 젊은 아이들(새번역, “어린 아이”)이 성에서 나와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하였습니다. 엘리사를 조롱한 아이들의 나이가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십대 초중반의 아이들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온 이스라엘에 익히 알려졌던 엘리사 선지자를 알아보고 그를 향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놀려 댔습니다. 그들은 엘리사 선지자가 대머리였기 때문에 “대머리”라고 놀려댔을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스승이었던 엘리야 선지자가 얼마 전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엘리사에게도 너도 “올라가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떠나라, 가 버려! 네 선생님처럼 하늘로 가 버릴 때라고!” 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단순히 힘없고 나이 많은 노인을 괴롭히는 악을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선지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며 그것으로 그들을 책망하고 돌이키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선지자를 조롱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가진 그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슬프고 상한 마음으로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엘리사를 조롱했던 아이들은 전에도 자주 그렇게 똑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어 치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벌을 받아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말씀의 선지자인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가지신 분노를 진지하게 선언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때에 놀랍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암콤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그곳에 있던 아이들 중 마흔 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찢어 죽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 세 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하는 것에 주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 있는 “작은 아이들”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말과 행동이 악했기 때문에 그들을 벌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이들의 행동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마음으로 품는 생각과 모든 말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둘째, 선한 사람들을 조롱하고 기독교 신앙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일인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악한 일이지만, 경건한 사람들과 그들의 신앙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것은 더욱 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것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비웃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죄는 우리에게 큰 슬픔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암콤 두 마리에게 찢겨 죽임당한 아이들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아이들에게 그 날의 기억은 일평생 그들을 고통스롭게 하였을 것입니다. 또 죽임 당한 아이들의 죄는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로 눈물을 쏟고 울부짖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 우리 마음을 선하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선하게 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시는 성령님만이 우리 마음을 선하게 바꾸어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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