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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특별] 십자가를 지고

최종 수정일: 2023년 4월 7일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요 19:17)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장이 있었던 골고다로 나가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에는 여러 가지 형벌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목숨을 끊는 사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 목숨을 끊을 때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사용되었는데, 십자가형은 가장 흉악한 범죄자나 또는 로마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자들에게 가해졌던 형벌입니다. 예수님께 내려졌던 형벌도 십자가형이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민란이 나는 것이 두려워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형이 언도되면 십자가에 달리기까지의 절차가 있습니다. 십자가형이 확정된 죄수를 로마 군인들은 채찍질하였습니다. 이때 죄수는 채찍에 맞아 살점이 떨어지고 많은 피를 쏟는데, 때때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잔혹한 채찍질을 마친 후에는 죄수가 직접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 형틀을 매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장까지 가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은 후 온 몸이 피로 범벅이 되신 채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성문을 통과해 골고다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달려 돌아가신 일에 대한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향하고 계신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로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의 눈에는 한때 유대인의 왕으로 기대되었던 갈릴리 출신의 랍비가 처형당하는 것 정도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고 계신 그 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베들레헴에 있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을 때에 세상에 처음 존재하기 시작하셨던 분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15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여러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시고 수치와 고통 속에 해골로 향하고 계신 그분은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변함이 없으시고 영존하시며 무한하신 하나님입니다(히 1:). 온 세계가 그분에 의해,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고 보존되었습니다. 그분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십니다(히 1:3) 그분은 자신이 못 박혀 죽으실 나무를 친히 창조하신 분이시고 햇빛과 물을 내려 기르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조롱하고 채찍질했던 로마 군인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분이시고,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그들의 어머니의 젖으로 기르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성자 하나님께서 왜 이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나가는 방식으로 죽임 당하셔야 했습니까? 죽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목숨을 끊는 형벌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십자가 형으로 죽게 하셔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지고 가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짋어지셨던 더 무거운 짐, 곧 자기 백성의 많은 죄들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심은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께 옮겨졌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우리의 죄를 위하여 형벌 받으시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옮겨 놓았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죄를 예수님께 옮겨놓았던 친구가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일은 사람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그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옮겨놓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우리들의 죄악을 예수님께 옮겨 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영원한 사랑으로 이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가 영원 전에 예수님께로 옮겨졌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 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동의가 따랐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의 말씀에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처럼 따르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기쁘게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 시대에 아사셀 염소가 그림자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레 16장). 구약 율법에 의하면 대제사장이 아사셀 염소를 이끌고 와서, 그의 양손을 그 머리 위에 얹고 백성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죄가 염소에게로 옮겨감을 상징합니다. 그후 염소는 정한 사람에게 맡겨져 광야로 내보내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염소는 백성들의 모든 죄와 불의를 지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땅으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그 염소가 정말로 백성들의 모든 죄와 불의를 짊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염소는 장차 장차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보여주는 모형일 뿐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키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예루살렘 바깥으로 내보내지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했거나 해야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일은 영원 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 죽임 당하심으로 완성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우리의 죄를 성자께 담당시키신 것을 믿고 그 사실을 인해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짐을 지시고 골고다에서 죽임당하신 예수님을 믿고 마음 깊이 감사하며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자기 아들에게 우리 죄를 담당시키신 성부 하나님과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성자 예수님의 사랑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주님처럼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잘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메시야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에 가셔서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능력이나 권세를 드러내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놀랠 만한 기적을 행하시거나 하늘의 천군과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예수님 곁에 서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매우 당황스럽게 만드는 말씀을 한 가지 하셨습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그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는 엄하게 꾸짖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24)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자신을 믿는 백성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방식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기까지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비록 너희의 왕으로 세상에 왔으나 너희를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도 나를 따르려거든 너희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치실 뿐 아니라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물론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지실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우리 또한 우리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야 할 것에 대한 본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우리의 모든 죄짐을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죽임 당하신 사실을 믿고 감사한다면 여러분도 예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옥타비우스 윈슬로우 목사님은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라 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서 자랑스럽게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와 구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자들은 다 뿔뿔히 흩어져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정체를 감추고 예수님을 멀찍이서 따라갔다가 베드로를 알아보는 계집종의 추궁에 무서워서 모른다고 배반하였습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제자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살았으나, 제자들의 이런 모습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 주와 구주로 고백하며 주님을 위해, 주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 우리에게 하게 하신 일들에 따르는 모든 고난과 고통과 시련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고난이 찾아올 이유가 없지요. 소가 없는 외양간은 깨끗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소가 있는 외양간은 어떻습니까? 더럽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 일하고자 할 때 생각지 못한 어려움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죄를 못 박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정욕, 이기심, 탐욕, 자기 사랑, 이런 것들을 모두 철저하게 죽이는 것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세 가지는 모두 어려운 것입니다.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라고 하셨겠지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면 “자기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 짐’, ‘자기 가방’이라고 말하실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힘든 일이기에 “자기 십자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힘든 일이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우리를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시는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십자가가 엄청 가볍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로 오르시는 주님께로부터 시선을 떼지마십시오. 그분께 시선을 고정하시고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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