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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병철 안

[특별]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HDB 45문)

본문: 마가복음 16장 1-8절

요절: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1절 말씀을 보면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세 여인의 이름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북쪽 갈릴리에 계실 때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섬기던 여자들이었습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일곱 귀신”에 사로 잡혀 매우 비참한 삶을 살던 여자인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녀를 구원해주셨습니다(막 16:9 참조). 아마 마리아는 그 이후로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여서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을 섬겼을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을 때에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올라가실 때에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눅 23:27 참조).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은 그들의 마음을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들의 사랑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는 것까지 확인하였습니다(막 15:47).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한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일 후 첫날 곧 주일 새벽에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이 끝나고 새벽 같이 일어나서 아직 짙게 깔려 있는 어둠을 뚫고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무덤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무덤으로 향하는 이들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무덤은 큰 돌로 단단히 막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드리고자 향품을 품에 안고 길을 나섰지만, 예수님이 묻혀 계신 무덤을 막고 있던 문은 연약한 여인들 몇 명이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3절)

하지만 도착하여 눈을 들어보았을 때, 무덤 문을 막고 있던 큰 돌이 벌써 굴려져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4절)

‘굴려졌다’는 말은 돌이 스스로 굴러갔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굴려졌다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무덤 문을 막고 있던 돌을 굴려 치워놨다는 말입니다. 누가 치우신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분명히 무덤 문을 막고 있던 심히 큰 돌을 굴려내고 무덤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무덤 문을 여신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 여신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덤에서 나가실 수 있도록 돌을 굴리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굴리신 것은 여인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볼 수 있도록, 비어있는 무덤을 보고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확신하게 하시려고 굴리신 것입니다.

여인들이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신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고 대신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천사)이 오른쪽에 그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자 그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합니다.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라.”(6절)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라.”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두고 예수님께서 스스로 부활하셨다고 말하기도 하고 ‘살리움을 받으셨다’, 즉 하나님께서 그분을 살리셨다고도 말합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3:15)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 4:1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5:3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행 10:4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행 13:30)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 13:37)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벧전 1:21)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을 인해 기뻐합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합니까?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와 영원한 생명, 부활의 소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죽으심으로써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부활로써 의를 얻으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의롭지 않은 분이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의로우신 성자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 의롭다는 인정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부활로써 의를 얻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정죄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우리를 위한 의를 얻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게 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후,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죄를 지은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소나 양 같은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희생 제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바치신 이 제사를 받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정말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형벌을 남김 없이 받으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신 것이 확실한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와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 앞에 죄 용서를 받거나 의롭다 하는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보배로우신 피로써 하나님의 모든 의를 만족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드리신 예수님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디에서 압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그것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두 번에 걸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한 번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한밤중에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도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두 재판 모두 매우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거짓 증인들이 예수님께서 하지도 않으신 말과 일들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증언들끼리 서로 일치 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넘겨주었다는 것과 예수님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민란이 일어날 것이 두려워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었습니다. 두 재판에서 예수님은 죄인으로 정죄되셨고 처벌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예수님께서 옳으셨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 일으키셔서 예수님은 참으로 무죄하시며 의로우신 분이심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두 차례의 세상 법정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은 두 번의 재판을 무효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정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해 ‘그는 무죄하며 의로운 자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를 붙잡아둘 수 없으며, 무덤은 그를 토해내야만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부활로 얻으시고 확증 받으신 의를 우리는 어떤 대가도 지불함 없이 은혜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한 개인으로써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고 우리의 대표와 머리로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곧 우리 옛사람의 죽음이며,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와 저주와 형벌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예수님 한 사람의 죽으심이 아닌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예수님 한 개인의 부활로서의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영적 생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의 성령으로이것을 우리는 중생(또는 거듭남)이라고 부르며, 새생명의 씨가 우리 안에 심기워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오히려 죄 짓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의 여러 피조물을 사랑하며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삶을 살지 않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사람으로, 새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삽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사랑합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성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을 우리의 가장 큰 기업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한 그 고백을 우리 자신의 고백으로 삼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우리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런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는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새 생명은 장차 예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때에 있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의 생명을 미리 맛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확실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첫 열매를 보고 다른 열매들이 맺힐 것을 확신합니다. 첫 열매를 보고 그 첫 열매와 같은 열매가 열릴 것을 확신합니다. 첫 열매가 없다면 앞으로 다른 열매들이 맺힐 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어떤 포도나무에 첫 포도가 맺힐 때, 우리는 거기서 앞으로 그와 같은 포도가 열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 부르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 또한 장차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부활을 인해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얻으신 의에 우리로 참여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이제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부활절을 맞은 오늘 그리고 오늘뿐만 아니라 매 주일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며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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