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갱신(2)
- Lee Juman
- 2023년 1월 7일
- 4분 분량
1. 주일성수의 회복(마 11:28)
(1)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
오늘은 주일성수의 회복에 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보통 ‘주일’이라 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부르는 독특한 표현 정도로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일요일’이라고 말하면 부모님께서 ‘주일’이라고 해야한다고 여러 번 말씀해주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인은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를까요?
주일은 ‘주님의 날’이란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특정한 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계 1:10). 그 날은 ‘안식 후 첫 날’(행 20:7)이었고, ‘매 주의 첫 날’(고전 16:1-2)이었고, 이 날 교회는 예배로 모였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안식일에 관한 율법이 나오고, 주의 마지막 날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보면 교회는 더이상 (유대교적 방식으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던 것 같고(골 2:16 참고), 매 주의 첫날을 주일이라 부르며 그 날을 예배의 날로 지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안식일을 포함한 구약성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셨음을 확증하신 부활의 날, 곧 안식 후 첫 날을 주의 날이라 부르며,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날로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과 안식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먼저 안식일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보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정하신 창조 규례입니다(창 2:1-3). 그리고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인 십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4계명)고 명령합니다(출 20:8-11). 이렇게 안식일이 창조 규례요,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으로 주어진 안식일이라면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만 구약성경에 예표된 방식이 아니라 실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성취된 방식으로 지킬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절정인 부활의 날, 곧 주일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예배하는 날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지요. 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입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7항).
(2)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제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관하여 생각해봅시다. ‘성수’라는 말은 거룩하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기본적인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문맥에서 이 구별됨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구별됨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그 날을 다른 날들(6일)과 구별하여 특별히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첫 번째 방법은 6일 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것입니다. ‘멈추고 쉬는 것’은 안식일의 본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6일 동안의 창조를 마치셨을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으로 인해 결코 힘들지 않으셨기에, 하나님이 쉬시기 위해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이제 막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휴식을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창조 규례로서 안식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세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누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안식일에 사람은 무엇을 하여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의 찬송을 드리는 것으로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과 부패한 우리의 본성은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일상의 일들을 멈추고 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주일에도 일하고 공부하는데, 나만 멈추면 경쟁에서 뒤쳐지고 결국 실패하게 될 거란 두려움 때문입니다. 또는 주중에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에는 나만을 위한 쉼을 누리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이기적인 마음은 우리로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을 명령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삶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고 마음껏 쉬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휴식과 오락은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온전히 신뢰할 때,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이 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되, 기쁘고 복된 날로 지킬 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의 제목은 “예배와 안식일”입니다. 예배와 안식일이 한 세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멈추고 쉬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 날을 예배하는 날로 지킬 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 규례에도 합당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관점에서도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며 예배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십니다. 신앙고백서는 우리가 주일에 공적 예배와 사적 예배에 힘써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공적 예배란 온 회중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주일 예배를 의미합니다. 사적 예배란 우리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 부서별로 모여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시간, 가정예배로 모이는 시간 모두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공적 예배로 모이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공적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일에 충분히 갖지 못했던 사적 예배에도 할 수 있는 대로 힘써야 합니다.
(3) 주일을 잘 준비할 때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주일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특별히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을 준비하는 것은 합당하고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부득이하게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한 주 동안 우리를 사로잡았던 염려와 걱정을 내려놓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또 주일 아침이 분주해지지 않도록 주일 준비를 미리 해놓는 것도 도움이 됩니니다. 주일에 빠지지 않고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어떤 은혜도 경험하지 못한 것처럼 그 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일을 그렇게 보낸 사람이 한 주를 주님과 동행하며 은혜를 누리며 보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잘 준비함으로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청소년 시기의 여러분에게 한 주 동안 허락하신 일은 대부분 ‘공부’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6일 동안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에 힘쓰는 것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진로와 직업을 정하고 준비할 때에도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진로를 선택해야 하고, 그렇게 선택한 직업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소명으로 주신 일이 있는데, 그 일이 부득이하게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의료진, 소방관, 군인 등의 직업이 그 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고 생각한다면, 그 직업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과 행복을 얻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밖에서 찾는 이 모든 노력은 허망합니다. 그 모든 것들은 넓은 길처럼 우리에게 참된 안식과 행복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멸망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실망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과 행복을 찾는다면, 여러분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식과 행복,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의 영원한 안식인 그리스도께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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