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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Lee Juman

회복과 갱신(4)

4. 교리교육의 회복(사사기 2:10 )

성경과 교리의 관계


종종 성경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교리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리는 성경과 상관 없이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교리가 성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교리가 성경과 상관이 없거나, 성경과 대립하는 어떤 것은 아닙니다. 교리란 가장 간단히 설명하면, ‘성경의 진리를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창세기 1:1을 읽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야’라고 말했다면, 방금 우리가 한 말이 교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리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설교, 성경공부는 교리적이고, 우리가 성경과 신앙에 관해 말할 때 거기에도 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교리가 아닙니다. 그 교리가 바른 교리냐 잘못된 교리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교리가 불필요하고 해로운 것이 아니라 잘못된 교리가 불필요하고 해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교리를 강조하고 교리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도들이 잘못된 교리에 빠지지 않고 바른 교리를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리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도에게 삶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성도의 삶은 믿음의 열매로서, 그의 믿음이 참된 것인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의 삶이 믿음의 열매라면, 우리는 ‘교리보다 삶’이라고 말하기보다 ‘삶을 위한 교리’ 또는 ‘삶에 앞서 교리’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성도의 삶을 위해서 교리가 필요하고, 그렇기에 교리가 삶에 앞선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은 그 대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고, 믿음의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리와 삶은 모두 중요하지만, 순서상 교리가 삶에 앞섭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믿는 교리에서 비롯됩니다.


성경과 교리의 관계를 잘 정리해주는 표현이 있어 소개합니다. 16-17세기 개혁교회는 오직 성경만을 ‘노르마 노르망스’(norma normans)라고 믿었습니다. ‘규범을 세우는 규범’이란 뜻입니다. 한편 교리는 ‘노르마 노르마타’(norma normata)라고 불렀는데요. ‘규범으로 세워진 규범’이란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경만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진 규범입니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온 규범으로 성경에 부합할 때만 우리에게 권위 있는 규범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교리


우리 교회는 청교도적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회로서,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성경에 부합한 교리로 믿고 고백합니다. 또 유럽 개혁교회가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세 개의 신조라고 부르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조도 성경에 부합한 교리로 믿고 고백합니다. 또한 더욱 보편적인 교회들이 믿고 고백하는 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도 우리는 성경에 부합하는 교리로 받아들여 믿고 고백합니다.


이 교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옛 신앙고백을 따르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이 매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들은 오래 전에 작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랜시간 교회 안에서 검증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말한 것처럼 신앙고백서는 교회가 ‘죽은 자들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도록 격려합니다. 교회는 중요한 진리를 고찰할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 들어서는 안 되고, 앞서 간 사람들의 견해도 들어야 합니다. 교리교육은 우리보다 앞서 걸어갔던 경건한 신앙의 선배들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 유익이 참 큽니다. 이제 교리교육의 유익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교리교육의 유익


교리교육의 유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시간에는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교리교육은 교회가 진리의 순수성을 보존하는데 큰 유익을 줍니다. 앞에서 우리 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교리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이 진술한 교리를 성경에 부합하는 교리로 믿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 어떤 유익을 줄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제가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교리에 따라 이 설교가 성경적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다음주에 제가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줄 알았는데, 성경을 다시 살펴보니 믿음뿐만 아니라 선한 행위가 함께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네요.”라고 설교하면, 여러분은 우리의 신앙고백에 따라 그 설교는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교회에 이런 규범이 되는 교리가 없다면, 제가 동일하게 설교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중에 목사님이 성경을 제일 잘 아니까, 목사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라며 그냥 넘어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의해 규정된 규범(노르마 노르마타)이 없는 교회는 목사의 성경해석이 최고의 교리가 될 위험에 빠집니다. 이렇듯 교리는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순수하게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경의 진리를 가장 높이는 교회는 교리를 부정하고 성경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교회가 아니라 성경과 함께 성경에 의해 규정된 규범을 중시하는 교회입니다.


둘째, 교리교육은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유익을 줍니다. 칼뱅은 기독교강요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기독교강요의 역할, 곧 교리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성경을 통해 그 지혜의 무한한 보배를 나타내려 하셨기 때문에 성경에 들어 있는 완벽한 교훈에 아무것도 추가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아직 성경으로 잘 훈련받지 못한 사람은 일정 정도의 안내와 지도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피해야 할 실수들이 무엇이며 그가 흔들림 없이 고수해야 할 길, 곧 성령께서 그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확신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지도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빛을 다른 이들보다 많이 받은 사람들이 아직 미숙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미숙한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간절히 선사하려하신 교훈 전체를 발견하도록 이끌며 도와줄 책임이 있다. 사람이 성경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싶을 때, 기독교 철학을 구성해 줄 성경의 근본적이고 가장 중대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 그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칼뱅은 교리는 일종의 지도와 같다고 말합니다. 지도를 보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다릅니다. 하지만 지도를 보면 산을 안전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교리는 성경 곳곳에 흩어져 있는 내용을 주제별로 조직화한 것입니다. 즉 성경의 주요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교리교육은 성경의 진리가 다음 세대에 전수되는 데 큰 유익을 줍니다. 팔츠교회법(1563)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첨부하기 전에 ‘요리문답에 대하여’란 제목으로 요리문답에 대해 소개하는데요, 교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경건한 성도들은 모두 교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집과 학교와 교회에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쳐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녀들에게 제때에 유익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 교리를 행하지 않게 되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부패성이 급속히 그를 장악하여 마침내 교회와 국가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며 부모에게 이것을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특별히 다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다(신 6:6-7). 셋째,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할례를 받은 후 성장하여 이해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언약의 표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이와 같이 그들이 받은 세례와 관련하여 또 기독교의 신앙과 회개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는 장차 이들이 교회 앞에서 자기들의 신앙을 고백하고 주의 상으로 나갈 수 있기 위해서이다.”


팔츠교회법에 따르면 요리문답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리교육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대를 대상으로 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자녀들의 교리교육을 소홀히 할 때 우리는 사사시대와 같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삿 2:10)를 보게 될 것입니다. 칼뱅은 에드워드 6세의 섭정이었던 서머셋 공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교리문답 없이 결코 보존될 수 없다는 내 말을 믿으십시오. 왜냐하면 교리문답은 좋은 곡물이 사라지지 않고 대를 이어가며 번식하게 하는 씨앗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바라고, 이내 사라지지 않을 그런 덕성을 고양시키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훌륭한 교리문답으로 아이들을 양육시키십시오. 그 교리문답은 참된 기독교 진리가 진술되어 있는 것으로서 어린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간략하게 교육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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